동국제강 분할 출범 후 부산공장 첫 공개
월풀·삼성·LG가 사랑한 ‘고품질 강판’ 생산
스타벅스·이케아 등 건축물 내·외장재 사용
노 코팅·노 베이킹 공법…‘LNG 제로’ 목표
“2030년 매출 2조·100만t 생산체제 구축”
[부산=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시뻘겋게 녹이 슨 쇳덩어리가 몇 가지 공정을 거치자 화려한 꽃을 수놓은 LG전자 냉장고 문짝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 21일 찾은 동국씨엠 부산공장 최종 라인에서는 ‘때 빼고 광낸’ 은빛 철판들이 쉼 없이 쏟아져나왔다. 냉장고 앞판과 같은 가전제품부터 나무 무늬의 스타벅스 건물 내장재, 파란색 이케아 외장재까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컬러강판’은 대중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가전이나 반도체처럼 우리 기업이 세계 1위를 달리는 분야 중 하나다.
| 동국씨엠 부산공장 전경.(사진=동국씨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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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씨엠(460850)은 1972년 국내 최초로 컬러강판을 생산한 업체다. 이후 끈질긴 투자로 약 40년 만에 세계 시장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다. 동국씨엠의 전신인 연합철강은 2004년 유니온스틸로 사명을 바꿔 2015년 동국제강으로 합병됐다가 올해 6월 전문성 강화를 위해 동국씨엠으로 분할 출범했다. 이날 동국씨엠은 출범 후 처음으로 새롭게 단장한 부산공장을 언론에 공개했다. 벽면에 새긴 회사 로고는 물론 작업복과 안전모까지 모두 새 사명인 동국씨엠으로 바꿔 달았다.
주장한 동국씨엠 부산공장장은 “1993년 입사 당시만 해도 라인이 2개에 불과했는데 어느새 컬러강판 9라인, 도금강판 6라인, 연속산세압연 1라인 규모의 큰 공장으로 성장하게 됐다”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동국씨엠 부산공장 연면적은 35만3326㎡(10만7000평)로 1300여명의 인력이 근무 중이다. 그는 “동국씨엠은 새로운 공정을 개발하고 세계적 가전 회사인 월풀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등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속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공장 한편에는 가공 전 상태인 녹슨 열연코일이 화장지처럼 둘둘 말려 야적돼 있었다. 전국 곳곳에 폭염 주의보가 발효된 탓에 후끈한 열기를 예상하며 공장 안으로 들어섰지만, 예상 외로 내부 온도는 높지 않았다. 뜨거운 쇳물을 직접 뽑아내는 것이 아닌, 고로에서 이미 생산된 철강재가 소비자에게 닿을 수 있도록 예쁘게 다듬는 게 이곳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공정 전반은 쇳덩어리에 미려함을 더하는 과정인 만큼 세심함과 정교함을 요구했다.
| 동국씨엠 부산공장에서 생산된 냉연코일.(사진=동국씨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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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 들어서니 열연코일들이 저장된 거대한 하이베이창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창구에는 열연코일 2600여개, 총 7만5000톤(t)이 저장된다. 창구에서 운반된 날것 상태의 열연코일은 가장 먼저 여러개의 코일을 이어 붙이는 자동용접 공정으로 투입된다. 이어 용접된 열연은 1600MPM 속도로 다음 공정인 산세공정으로 이동했다. MPM은 1분당 1미터를 이동하는 속도다. 1년에 180만톤(t)의 열연코일이 이곳에서 처리된다고 한다.
열연강판은 표면이 녹슬어 거칠고 두께가 일정하지 않다. 따라서 염산으로 세척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공정 첫 번째 라인인 연속냉간압연설비(PL-TCM)는 둘둘 말린 열연코일을 판판하게 피면서 표면의 불순물을 제거했다.
피클링(Pickling) 탱크가 고압 스프레이로 염산을 뿌려대자 열연코일이 금세 회색으로 변했다. 순도 높은 철이 완성된 것이다. 완성된 철을 5개의 스탠드와 6개의 롤로 밀면서 얇게 펴내는 과정(냉간압연)까지 마치면 두께 0.25~2.5mm의 얇고 단단한 철로 바뀌게 된다. 압연을 마친 이 상태를 ‘풀하드(Full Hard)’라고 부른다. 완성된 풀하드는 다시 둘둘 말려 5CGL(연속용융아연도금라인)로 이동했다.
| 동국씨엠 컬러강판 생산 S1CCL 설비.(사진=동국씨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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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CGL은 철에 아연이나 갈바륨(아연+알루미늄)을 도금하는 공정인 만큼 들어선 순간 화학제품 냄새가 확 풍겼다. 이곳으로 온 풀하드는 먼저 바깥에 묻은 압연유를 비눗물로 씻고 수세미로 문지르는 전처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김덕민 품질관리팀 부장은 “철판에 기름이 남아 있으면 아연에 아무리 담가도 철판에 달라붙지 않기 때문에 잘 세척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금을 마친 철판은 라인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려오며 마치 하얀 은빛 장막을 연상케 했다.
컬러강판 공정의 백미이자 마무리 단계인 S1CCL으로 들어섰다. S1CCL은 ‘스페셜 넘버원 컬러 코팅 라인’의 약자다. 고품질 라미나 제품을 생산하는 전 세계 유일 라인으로 1600mm의 광폭 생산이 가능하다. 반으로 자르면 바로 냉장고 앞판으로 사용할 수 있는 크기다. 이 라인은 부산공장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졌으며 2021년 준공 후 이날 외부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 동국씨엠 엔지니어가 컬러강판 S1CCL 생산제품을 육안 검수하고 있다.(사진=동국씨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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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연강판은 이 공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컬러강판으로 거듭난다. 이곳에서 철판은 어떤 필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유리 혹은 나무가 될 수 있고, 원하는 무늬를 새겨넣을 수도 있다. 패턴이 정교하고 공정이 추가될수록 단가도 높아진다.
컬러강판 세계 1위 업체인 동국씨엠은 선두를 유지해 2030년 관련 매출 2조원, 100만t 생산체제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최근 라미나 필름 생산라인(FCL)을 업계 최초로 구축해 컬러강판 수직계열화에 성공했다. 라미나강판은 표면 구현과 가공성이 뛰어난 프리미엄 컬러강판이다. 그동안 LX하우시스 등 외부에서 사오던 라미나 필름을 직접 생산해 원가를 줄이고 품질을 높여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매출과 별개로 동국씨엠 질적 성장 목표의 핵심은 ‘친환경’이다. 컬러강판은 코팅과 오븐에서 가열·건조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하는데, LNG 1㎥당 2㎏의 적지 않은 탄소가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코팅과 건조·가열 과정이 없는 ‘노 코팅 노 베이킹(No Coating No Baking)’ 방식을 구상해 냈다. 현재는 노코팅 1단계 실증을 완료한 상태다. 최우찬 동국씨엠 칼라연구팀 팀장은 “컬러강판 생산 시 외부에서 열을 주지 않고 원료가 자체적으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열을 발생해 알아서 건조할 수 있게 만들 예정”이라며 “실증 완료 후 2027년 에코컬러코팅라인(ECCL) 양산 설비 투자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 최우찬 동국씨엠 칼라연구팀장.(사진=동국씨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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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씨엠 공장 내부에 장세욱 동국홀딩스 부회장의 친필 서명이 적힌 컬러강판이 전시된 모습.(사진=김은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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