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클리닉] 재발률 높은 '진행성 간암', 1차 치료로 암 크기 줄여 간이식 가장 효과적

이순용 기자I 2023.02.22 07:07:56

은평성모병원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 간이식센터 박정현 교수
간암의 다양한 치료법 중에 간이식이 가장 높은 생존율 보여
이식에 앞서 1차 치료에서 좋은 반응 보이면 이식 예후도 좋아

[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침묵의 장기’로 불리는 간은 질병이 생겨도 증상이 없는 대표적인 장기로 알려져 있다. 암이 발생해도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어 환자가 스스로 알기 힘들고, 증상이 나타난 후에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암이 폐암에 이어 사망률이 두 번째로 높은 암에 이름을 올린 이유다.

간암 환자들은 대게 간암의 원인이 되는 B형· C형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만성간염, 알코올성 간경화와 같은 동반 질환을 가지고 있다. 암을 늦게 발견해 병기가 높은데다 동반 질환으로 인해 병이 계속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특징 때문에 간암은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2016년~2020년을 기준으로 5년 생존율이 40%를 넘기지 못한다. 전이가 없는 초기 간암의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5년 생존율이 60%, 치료가 까다로운 진행성 간암은 20% 수준에 머문다. 전체 암 평균 5년 생존율이 71.5%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다.

◇간암· 동반질환 동시 치료가 최선의 선택지

최근에는 간암과 동반질환을 동시에 치료하는 간이식이 가장 이상적인 치료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내외과적 치료법을 통해서도 치료가 되지 않고 간암을 비롯한 각종 간질환이 계속 진행하는 경우에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다.

B형간염 보유자로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던 중 간암 판정을 받은 최 모(50세)씨의 사례가 그렇다. 최 씨는 집 인근 병원에서 시행한 CT 검사에서 간암 의심 판정을 받고 은평성모병원을 찾았다. 진단을 위해 추가적으로 시행한 MRI 검사에서 비장이 커지는 증상을 동반한 간경화가 관찰됐고, 간의 좌우엽에서는 3개의 간암 병변이 발견됐다. 가장 큰 병변은 3.7cm. 게다가 오른쪽 간문맥에는 혈관 침범 소견을 보였다. 의료진은 최종적으로 진행성 간암으로 진단했다.

일반적으로 최 씨와 같이 간의 좌우엽에 모두 발생한 진행성 간암은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수술적 치료가 불가능하다. 간이식을 통한 치료 역시 밀란척도(간이식 수술 후 충분한 생존율을 기대하기 위한 기준)를 벗어나 이식을 시행하더라도 예후가 매우 나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은평성모병원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 간이식센터 협진팀이 최씨의 치료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간담췌외과 박정현 교수는 “여러 진료과 의료진이 협진 회의를 통해 논의한 결과 간암 병변에 대한 항암색전술과 혈관 침범에 대한 방사선 치료를 먼저 진행하고 암의 크기를 줄여 간이식 수술을 하는 것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은평성모병원 협진팀은 2차례의 항암색전술과 10차례의 방사선 치료를 적용했다. 그 결과 혈액검사에서 간암 표지자 수치들이 눈에 띄게 낮아졌고, 영상검사에서도 간이식 수술로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병변이 호전됐다. 최 씨는 가족들과 논의 끝에 아들의 간을 이식받고 약 1달간의 회복을 거쳐 무사히 퇴원했다. 3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외래에서 추적관찰을 받고 있는 최 씨는 재발없이 건강하게 생활하는 중이다.

박정현 교수는 “환자의 경우 이식 전 치료를 통해 암의 크기가 95% 줄어들 정도로 선행 치료가 효과적이었다”면서 “간이식 수술로 좋은 예후를 기대하기 어려운 진행성 간암 환자에서도 수술 전 시행한 간암 치료법에 반응이 좋다면 선별적으로 간이식 수술을 통해 얼마든지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간암으로 간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치료 성적은 매우 좋은 편이다. 대개 5년 생존율은 70~80%로 보고된다. 앞선 최 씨의 사례처럼 예후가 나쁠 것으로 예상되는 진행성 간암에 대해서도 선행 치료 후 선별된 환자에게 이식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5년 생존율이 70% 전후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암의 다양한 치료법 중에 간이식이 가장 높은 생존율을 보인다는 것이 통계로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본래 간암 치료에 있어 간이식은 암 조직이 간에만 국한되고, 혈관에 암이 침범해 있지 않으며 병변의 크기가 작고 개수 또한 적어야 이식 후 성적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 진료과가 모여 치료계획을 수립하는 협진 시스템의 활성화와 다양한 간이식 예후인자 발굴 및 이식 술기의 눈부신 발전을 통해 점차 적용 환자군이 확대되는 중이다.

은평성모병원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 간이식센터의 경우에도 간담췌외과, 소화기내과, 방사선종양학과, 병리과, 영상의학과, 종양내과 의료진이 참여하는 협진 시스템을 구축하고 적극적인 선행 치료와 간이식 수술을 시행하며 기대 수명을 높이는 치료에 나서고 있다.

은평성모병원이 치료한 간암-간이식 환자 중에 33%가 이처럼 진행성 간암으로 1차 치료를 받은 후 완치를 목적으로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다. 전체 간암-간이식 환자에서 발생한 재발률은 5%에 불과해 이식 후 성적도 매우 뛰어나다.

간이식은 새로운 장기를 얻는 방법에 따라 뇌사간이식과 생체간이식으로 나눌 수 있다. 뇌사자 간이식은 뇌사 기증자가 발생하면 이식 대기자 중에서 가장 간이 좋지 않고 이식에 적합한 환자가 우선 수혜를 받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뇌사 기증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기증자 간의 상태나 적출 후 이송시간 등의 복합적 요인들로 인해 활성화에 어려움이 있다.

타인의 건강한 간 일부를 이식하는 생체간이식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가장 활발히 시행 중이다. 1년 생존율이 90%, 5년 생존율이 80% 이상으로 성적도 매우 좋아 뛰어난 술기를 자랑한다.

◇ 만성간염 환자는 음주 흡연 비만 피해야

생체간이식의 경우 수혜자 못지않게 기증자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가 동반돼야 한다. 생체이식은 가족 사이의 기증이 많고 대부분의 기증자들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활발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술 후 일상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수적이다.

은평성모병원 장기이식병원 박정현 교수는 “우리병원의 경우 생체간이식 기증자 평균 연령이 35.5세로 매우 젊은 편”이라면서 “복강경 수술을 통한 간 절제로 기증자의 상처를 최소화 하는 것은 물론, 수술 트라우마와 상실감 관리, 재활과 운동, 영양상태 평가와 식단 관리, 기증 후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 경제적 문제까지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지원한다”고 밝혔다.

간이식을 통한 간암 치료는 건강한 간을 얻어 기능을 회복시키는 장점이 있지만 이식 후 세밀하게 관리할 부분도 많다. 일반적으로 병든 간을 모두 제거하기 때문에 이식 후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면역체계의 문제와 재발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간이식 후에는 이식한 간이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면역억제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해야한다. 면역억제제가 적정한 혈중 농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넘치면 면역체계가 필요 이상으로 억제돼 감염에 취약해진다. 반대로 부족하면 이식 거부반응이 나타난다.

또한 B형간염이나 C형간염을 동반했던 환자들의 경우 간염 재발 가능성이 있다. 간암의 병기가 높았던 경우에는 혈액이나 몸속에 남아 있던 암세포가 다시 발현되면서 암이 재발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정기적인 추적검사와 경과 관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주기적으로 유행하면서 면역억제 상태에서 작은 감염에도 크게 나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높아졌는데, 생활환경을 청결히 유지하고 가급적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는 등 각별한 관리가 요구된다.

박 교수는 “간이식 수술 후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면역억제제의 경우 장기 복용을 했을 때 신장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어 복용을 중단하기 위한 시도와 연구들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나 복용 중단 후 나타나는 거부반응 발생률이 워낙 높아 아직은 연구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간 질환 역시 조기진단과 예방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간 질환 진행의 시작 단계인 간섬유화는 만성 간질환에 의해 간이 손상과 재생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간세포에서 발생한 염증으로 인해 정상 세포가 파괴되는 과정에서 간에 흉터가 나타나고, 이런 흉터가 광범위하게 진행되면 간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간경화로 발전한다. 간경화는 간암을 유발할 수 있는 전암 병변이자 다양한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는 치명적인 질환으로 국내에는 약 10만 명 이상의 환자가 있으며 그 수는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따라서 B형· C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의 경우 적극적인 치료와 정기검진을 통해 질환 발생 여부를 확인하고, 간경화나 간암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관리해야한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가 많아 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데 40세 이상이면서 간염 바이러스가 있다면 6개월마다 복부초음파와 혈액검사가 권고된다. 간경화를 진단받은 환자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6개월 정기검사를 받아야 한다.

만성간염이 있는 환자에게 음주, 흡연, 비만은 피해야 하는 위험요소다. 음주의 양과 빈도를 줄여야 하고 간질환이 있다면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 비만은 그 자체로 지방성간염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고 비만이 지속되면 간경화, 간암의 위험이 증가하므로 적극적으로 체중 조절을 하는 것이 좋다.

박정현 교수는 “간경화 환자가 주기적인 검진으로 암을 조기진단 받으면 다학제협진을 통해 환자의 상태에 맞는 다양한 치료방법을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며 “암이 간에만 국한된 초기 간암은 진행성 간암보다 치료 효과가 월등히 높으므로 예방과 더불어 조기검진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간 질환이 있는 환자들의 경우 주변에서 권하는 치료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약초나 식품을 복용해 오히려 악화를 초래하는 사례가 있는데 평소 섭취하지 않던 음식이나 약물 복용 시 꼭 전문의와 상담할 것을 권한다”고 덧붙였다.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장기이식병원 박정현 교수(가운데)가 생체간이식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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