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러브레터’는 미국 극작가 A.R. 거니가 대본에 써놓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무대 위에는 책상과 의자 두 개 뿐. 100분에 달하는 공연 시간 동안 두 명의 배우가 보여주는 모습 또한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한장씩 읽는 것뿐이다. 무대 위에서 배우가 자유롭게 움직이며 연기하는 연극을 기대했다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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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8세 때 처음으로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한 앤디와 멜리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앤디가 멜리사의 어머니에게 멜리사의 생일에 초대해준 것에 대한 감사 편지를 쓰면서 시작한 두 사람의 편지 여행은 시간과 장소를 뛰어 넘어 50년 가까이 계속된다. 관객은 1937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는 두 주인공의 편지를 통해 이들의 인생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편지 낭독으로만 이뤄진 작품이지만 공연 시간은 좀처럼 지루하지 않다. 무엇보다 8세부터 50대까지 인물들이 겪는 세월의 변화를 오직 목소리로만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편지에 그려진 그림이 무대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방식의 연출 또한 극에 몰입하게 만든다.
주인공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편지의 내용 또한 흥미롭다. 유년 시절엔 수업시간에 편지를 읽고 쓰다 선생님에게 혼이 나기도 하고, 친구들과 지내며 즐거운 일과 속상한 일을 함께 나누는 모습은 풋풋한 10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20대에 접어들면서 서로 묘한 감정을 느끼지만, 편지로는 이를 드러내지 못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안타깝기도 하다. 이후 엇갈리는 관계 속에서 50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는 순간은 뭉클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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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에선 배우 박정자와 오영수, 배종옥과 장현성이 각각 페어를 이뤄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박정자-오영수 페어가 노(老)배우의 원숙한 연기로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무대를 보여준다면, 배종옥-장현성 페어는 등장인물과 비슷한 나이대로 캐릭터에 깊이 몰입한 연기를 보여줘 각각의 페어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네 배우들은 공연을 마친 뒤 “대본을 외우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쉽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어려운 작품일지 몰랐다”며 “관객이 우리의 이야기가 머리 속에 그려질 수 있게 전하려 노력했다”고 전했다. ‘러브레터’는 다음 달 13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