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發 고용대란]②비행기 날개 꺾이자 30여년 바친 일터도 '칼바람'

이소현 기자I 2020.03.24 05:51:00

코로나19 여파로 한산한 인천국제공항 현장
공항행 리무진 버스도 긴급 감축운행 줄이어
"IMF·사스도 겪었는데 일자리 잃은건 처음"
항공기 떠야 관광도 살아.."유동성 위기 지원"

한 버스정류장에 코로나19 여파로 공항 리무진 버스 운항을 중단을 알리는 공지글이 게재돼 있다.(사진=이소현 기자)
[(인천)=이데일리 이소현·송승현·강경록 기자] 한국공항공사에서 30년을 근무하고 3년 전부터 인천국제공항행 리무진 버스 운전기사로 일했던 김상원(가명·65)씨는 지난 22일부터 운전대를 놓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공항을 오가는 손님이 줄자 회사가 긴급 감축운행을 결정한 탓이다. 김 씨는 “공항에서만 30여년 넘게 근무하며 IMF(외환위기)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위기도 겪어봤지만, 일자리를 잃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복귀할 수 있을 텐데 언제가 될지 몰라 생계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것은 김 씨만의 일이 아니다. 실제 경영상의 위기가 가중돼 1977년 국내 최초로 공항리무진 버스를 운영한 ㈜공항리무진은 23일부터 기존 노선 22개에서 78% 감축해 7개만 운영하기로 했다. 서울공항리무진㈜도 24일부터 노선 3개만 남기고 나머지 4개는 운항을 중단하기로 했다.

지난 20일 찾은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승객 발길이 뚝 끊겨 한산한 모습이다.(사진=송승현 기자)
◇세계 5위 인천공항 승객 ‘뚝’…항공편 줄자 협력사 ‘휘청’

지난 20일 찾은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3층에는 국내외 항공사마다 전년대비 항공편을 80% 이상 운항을 중단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줄자 승객도 감소해 적막했다. 지난해 국제선 여객 7058만명을 실어 나른 공항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세계 5위 규모의 인천공항도 존폐기로에 처해 흡사 지방의 ‘유령공항’에 견줄만했다. 제1여객터미널 3층 3번 게이트에서 탑승객의 발열체크를 하는 인천공항공사 협력업체 소속 이수영(가명·32)씨는 “지금 국제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99%가 외국인”이라며 “여행 목적은 사라졌고 가끔 출장 명목으로 가는 한국인은 있지만, 그 비율도 현격히 줄었다”고 말했다.

사실상 고사 상태에 몰린 항공업계의 비상상황이 항공사는 물론 관련 업계로 충격파가 전방위로 번지고 있다. 업계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뛰어넘는 ‘실업 대란’이 발생할까 우려하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항공사뿐만 아니라 지상조업사, 관광, 여행 등 관련산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며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관련 업계가 고사하고 일자리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항공·관광 관련 규모 종사자는 약 34만명이다.

국적 항공사 8곳이 무급휴직에 들어간 가운데 지상조업사와 협력업체들은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조업사들은 항공기가 뜨고 내릴 때마다 돈을 버는 구조인데 노선의 80% 이상이 취소되면서 매출이 60% 이상 줄어 매달 100억 원 이상의 적자를 보고 있어서다. 대한항공 기내를 청소하는 2차 하청업체(EK맨파워)는 명예퇴직을 권유하고 있다.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23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 항공 및 공항 종사자들은 사용자들에 의해 강제연차는 물론 희망휴직, 심지어 희망퇴직까지 강요받고 있다”며 “영종도를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고, 한시적 해고금지를 선언해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여행사 창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관광업도 일자리 위협…고용유지지원금 2100곳 신청

국내 관광산업의 일자리도 위협받고 있다. 국내외 항공노선이 사라지면서 우리 국민의 해외여행은 물론 방한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확산하고 있어서다. 한국여행업협회가 자체적으로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국내 인바운드 여행사 100여곳을 조사한 결과 방한 외국인 관광객의 77%가 여행을 취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100개 여행사의 손실규모는 약 330억원으로 추정된다. 여행객이 사라지면서 관광업계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현재 경영이 악화해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관광업체는 2100여곳에 달한다. 고용유지지원금은 사업주가 경영난에도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유급휴업·휴직 조치를 하면 정부가 휴업·휴직수당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다.

구정환 한국여행업협회 과장은 “여행사 10곳당 1곳이 지원금을 받아서 버티고 있지만, 이들 업체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라며 “여행사의 90%는 5인 이하 규모로, 이런 사업체는 지원금을 아예 신청하지 않거나 지원받을 수 없어서 그냥 문을 닫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관광편의시설업과 관광객이용시설업, 유원시설업, 국제회의업은 고용유지지원금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구 과장은 “대략 10만명 이상은 어디에도 지원받을 수 없어 생계가 위험한 지경”이라고 했다.

◇항공 생태계 살려야 …“유동성 위기 지원책 필요”

업계는 항공 생태계의 붕괴를 막아야 항공사는 물론 관련 관광산업의 대규모 실업 대란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항공사의 유동성 위기 극복에 집중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저비용항공사 임원은 “항공사들은 항공기도 대부분 리스여서 담보도 없다”며 “유동성 확보가 절실하다. 항공사의 신용등급과 부채비율 한시적 완화 등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형항공사 임원은 “정부의 직접지원 대상을 대형항공사를 포함해 국적 항공사 전체로 확대해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전 세계 항공사 대부분이 약 두 달 정도만 버틸 수 있는 현금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하면서 “여름부터는 항공사들의 파산이 도미노처럼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항공컨설팅 전문업체 아시아태평양항공센터(CAPA)는 “특단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5월까지 대부분의 항공사가 파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0일 찾은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승객 발길이 뚝 끊겨 한산한 모습이다.(사진=송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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