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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람 그리고 법률]골프 고객 부상과 캐디의 안전배려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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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경 기자I 2019.12.14 08:15:00

`갑-을 관계` 한국적 상황 속 법률상 손배 책임 옳은가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법무법인 충정 김시주 변호사] 골프장에서는 보통 4명이 한 팀을 이뤄 한 명의 캐디와 함께 라운딩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우리나라 판례는 캐디의 근로자성을 부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일종의 `프리랜서`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대부분의 골프장은 캐디 피(caddie fee) 를 직접 받고 있지 않고, 골프장 이용객들이 개별적으로 캐디에게 현금으로 지급한다. 개인 경험에 따른 것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남성 캐디보다는 여성 캐디가 압도적으로 많고(강원도 쪽 골프장의 경우 남성 캐디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이는 강원도에서 여성 캐디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라 한다), 연령대는 다양하나 20대에서 30대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얼마 전에 골프장 사고와 관련한 판결이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골프장 이용객 A씨는 자신이 친 공이 바위에 맞았고, 그렇게 튕긴 공에 왼쪽 눈을 맞아 실명했다. 이에 A씨는 골프장과 캐디를 상대로 3억6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골프장 측은 캐디가 A씨에게 “공을 빼서 치거나 띄워서 치세요”라고 안내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스스로 친 것이며, 해당 장소에서 그와 같은 사고가 발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맞섰다.

법원은 “캐디는 아마추어 골퍼의 경기를 보조할 경우 더욱 적극적으로 경기 도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알리거나 안전을 배려할 의무를 부담하므로, 골프 공을 다른 장소로 옮겨서 치게끔 유도하거나 충분한 주의를 줬어야 했음에도 암석 해저드와 관련한 위험성을 충분히 주지시키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며 청구 금액 중 40%에 해당하는 1억3400여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캐디에게는 고객을 보호해야 할 안전배려의무가 있기 때문에 고객이 위험한 샷을 하려고 한다면 다른 장소로 공을 옮겨서 치게끔 유도하거나 충분히 주의를 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므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안전배려의무의 의미를 규정하고 있는 법령은 없다. 판례 중에는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 여행사와 여행객의 관계에서 안전배려의무를 언급한 사례들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대법원 판례에서 언급된 사용자와 여행사에게 인정된 안전배려의무를 과연 캐디에게도 직접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용자나 여행자는 상황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지위에 있는 자임에 비해 캐디는 그런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캐디에게는 고객에게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 그 고객에게 그 위험 상황에 대해 `조언`을 할 수 있을 뿐 그 조언에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는 전적으로 고객의 몫이다.

캐디는 보조원이기 때문에 조언을 넘어 그 곳에서 샷을 하면 위험하다며 임의로 공을 옮긴다든가, 장애물을 넘겨 치지 못하게 막을 수 없다. 1벌타를 받고 공을 옮길 것인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장애물을 넘겨 칠 것인지의 결정은 전적으로 플레이어가 해야 한다. 특히나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멋진 트러블 샷으로 위기에서 탈출해 본 경험이 있는 골퍼들이라면 안전을 위해 공을 옮겨 치거나 바위를 피해서 치는 비겁한(?)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처럼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공을 칠 것인지에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고 어떤 샷을 할지는 플레이어의 선택 사항이다. 캐디는 플레이어가 올바른 결정을 하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에 머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캐디가 아무리 열심히 위험을 경고했더라도(물론 캐디는 위험도 경고했다고 주장하고 있기는 하다) 그 경고가 멋진 트러블 샷으로 위기를 탈출할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는 플레이어의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고객과 캐디 간의 관계가 플레이어-조언자(또는 보조자)라는 수평적 관계보다는, 갑-을 관계라는 한국적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캐디에 대한 성희롱, 폭언, 갑질 사건을 떠올려 보라) 캐디가 고객의 플레이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법률상 책임이란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이다.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비난할 수 없다. 만일 내가 그 캐디였다면 과연 나는 고객에게 공을 치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 김시주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32기△2006년 변호사 개업(법무법인(유한) 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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