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회장이 계열사 매니저급(대리·과장·차장)들을 만나 ‘행복 경영’을 화두로 소통하기 시작한 것은 연초부터. 지난 1월 2일 임원들과 시무식을 할 때 “구성원들을 자주 만나겠다. 100회는 만나겠다”고 한 뒤, SK이노베이션을 시작으로 SK종합화학, SK E&S, SK브로드밴드 등 지금까지 계열사 20곳 넘게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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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이 직원들과 만나 자신과 사회의 행복을 화두로 던진 것은 단순히 직원과 소통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전하면서 직원들로부터 통찰력(insight)을 얻기 위해서다. 구성원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문화가 돼야 사회적 가치가 창출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어려운 경영환경에 앞장서 대응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탑다운에서 벗어난 ‘나의 관점’..수평 문화
이런 방식의 토크 문화는 SK그룹사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SK ICT 패밀리의 맏형 격인 SK텔레콤의 박정호 사장은 격의 없는 대화를 즐긴다. 지난해 7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130여 명 되는 본사·계열사 CEO 및 임원이 조직이 아닌 ‘나의 관점’에서 계획을 말하는 ‘2분 발표회’를 연 데 이어, 수시로 관계사 임원들이 함께하는 토론회를 연다. 올 들어 SK텔레콤 및 SK브로드밴드 등의 주요 임원과 인공지능(AI)부서 젊은 임원들이 함께 한 회의는 그대로 직원들에게 생중계 해서 화제를 낳기도 했다.
박 사장은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MWC에 참석한 연구소·마케팅·서비스 분야 임직원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에 대해 하나씩 발표를 준비해 달라”고 했고 임원들은 긴장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직원 뿐아니라 임원들도 발표해야 하는데 예전과 다른 재밌는 게 아니면 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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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이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위해 공들이는 또 하나는 ‘공유 오피스’다. 최 회장은 2년 전 시무식에서 “매일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임원 근처에 부장 옆에 앉아 있으면 무슨 창의성이 나오겠는가. 다른 부서 이야기도 듣고 그래야한다”고 했고, 작년 9월 SK종합화학·SK루브리컨츠·SK E&S를 시작으로 공유 오피스가 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청진동 그랑서울 타워1에 입주한 SK E&S에는 지정된 좌석이 없다. 개인별 라커룸에 노트북이나 슬리퍼를 넣어두고 직원들은 출근해 그때그때 앉고 싶은 곳에 앉는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있는 SK하이닉스에는 임원 방은 있지만 문 없는 뻥 뚫린 구조이고, SK 지주회사가 있는 종로구 서린빌딩도 임원 방의 면적을 줄이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SK텔레콤의 MKT Data사업팀 등 300여 명이 일하는, 서울 종로구 소재 센트로폴리스 빌딩 27~29층에는 원하는 자리에 가서 스마트폰을 도킹 패드에 꽂으면 모니터에 내 화면이 뜨고 업무를 할 수 있다. 노트북조차 필요 없다.
SK E&S 직원은 “예전에는 팀장, 부장이 하루에도 수차례 부르는 바람에 내 업무는 퇴근해서 저녁에 해야 할 때가 많았는데, 공유 오피스를 하고 나니 일의 집중도가 높아졌다”고 환영했다. 팀이나 부서와 관계없이 아침에 출근해서 앉고 싶은 자리에 앉다 보니, 상사가 사소한 일을 시키기 위해 멀리 있는 직원을 부르려면 오히려 눈치 보인다.
임원들 중에는 생소하다는 평가도 있다. SK 한 임원은 “솔직히 후배 직원들을 볼 수 없으니 불편하긴 하다”면서도 “10년 전 SK텔레콤이 대리·과장·차장을 없애고 매니저 제도를 도입한 뒤 지금은 익숙해지지 않았나. 이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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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MWC가 열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T타워에 있는 텔레콤을 3층씩 이사나가게 해서 스마트오피스를 만들고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오류를 잡아 그 경험으로 스마트워크 플레이스를 만드는 걸 5G시대 비즈니스모델(BM)로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