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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애물단지 대우조선…10년간 구조조정 미뤄
사실 산은 입장에서 대우조선은 20년 묵은 애물단지다. 대우그룹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무너지자 대우조선을 떠안았으나 그동안 제대로 관리가 안 됐기 때문이다. 이동걸 회장 표현대로라면 “인수해서는 안 될 회사”였다. 기회가 될 때마다 매각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뒤 산은의 방치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던 대우조선은 지난 2015년 유동성 압박에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다.
선택의 기로에 섰던 정부는 그해 10월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하고 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후 5조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드러나면서 지원금마저 바로 고갈됐고, 2017년 또다시 2조9000억원의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서는 악순환에 빠졌다. 이러자 ‘혈세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다’는 비판이 거세졌고, 불확실한 업황 속에서 국내업체끼리 저가수주나 과당경쟁을 막으려면 대우조선을 해체해 빅3 체제를 빅2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정부와 산은은 당분간 대우조선을 살려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과감한 구조조정은 미뤘다. 대우조선이 국내 경제나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큰 데다 수주취소 뒷감당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구조조정을 이끌었던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빅3가 모두 구조조정 중인데 빅딜을 한다면 남은 2개 회사마저 망가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철저한 금융논리를 앞세워 국내 1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을 파산시키면서도 대우조선에 천문학적인 혈세를 퍼부어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지적부터 정책 실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제논리나 구조조정 관점에서 보면 한진을 살리고 대우조선은 정리했어야 했다”면서도 “조선산업이 워낙 전후방 파급 효과가 크다 보니 관료들로서는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욕먹어도 정리하겠다는 이동걸‥현대重도 업황회복에 베팅
뒤로 미뤄졌던 조선산업 구조 개편이 속도를 낸 것은 정권교체와 조선업황 개선, 산은과 현대중공업의 이해 관계가 맞물려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취임한 이동걸 회장은 임기 중 산은 출자사 지분을 최대한 처분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헐값매각’이란 비판은 감내하겠다는 소신에서다. 실제 취임 이후 STX조선과 성동조선, 한국GM·금호타이어 매각과 구조조정 등을 밀어붙였고 대우조선 민영화도 그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현대중공업도 대우조선에 베팅하기 적기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우조선이 2017년 이후 2년 연속 흑자를 낸데다, 글로벌 조선업황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특히 대우조선은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선 등에 강점이 있어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또 현대중공업 우산 아래 편입되면 국내업체끼리 헐값 수주경쟁은 피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섰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날 “(인수합병이) 잘 이뤄진다면 세계적인 공급과잉과 조선사들의 수주·수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산은 입장에서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며 “현대중공업도 M&A라는 과감한 베팅을 한 것이다. 대우조선의 노하우나 현대의 저력을 고려하면 해 볼만한 게임”이라고 평가했다.
◇10조원 혈세 투입…회수방안은?
대우조선의 민영화 과정에서 그동안 퍼부은 공적자금을 어느 정도 회수할 수 있느냐도 관전포인트다.
대우조선은 2015년 산업은행 등으로 구성된 채권단으로부터 긴급유동성 지원과 출자, 채무보증 등으로 총 적게는 7조원, 많게는 10조원 안팎이 투입됐다. 산은은 대우조선 지분 55.7%를 보유한 최대주주인데, 현재 대우조선 보유지분 가치는 약 2조2100억원(31일 종가기준) 규모다. 당장 헐값매각 시비가 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단 산은은 대우조선 보유 지분을 새로 설립하는 현대·대우조선 합작법인에 현물출자하고 대신 1조2500억원 규모의 전환상환우선주(RCPS)와 보통주 약 600만주를 받게 된다.
M&A를 통해 당장 들어오는 돈은 없다. 대신 새로 설립되는 지주회사의 경영이 정상화해 기업가치가 올라가면 과실을 공유하는 구조다. 반대의 경우 주가가 떨어져 손실이 커질 위험도 있다. 산은은 또 현대중공업과 MOU를 맺으면서도 삼성중공업과도 매각 협상도 동시에 진행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경쟁을 붙여 결과적으로 공적자금 회수율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에서다.
이동걸 회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이번 M&A는 중장기적으로 공적자금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직간접적으로 투입한 자금을 최대한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