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춘선씨(77)는 미추홀구 주안3동행정복지센터 동장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김씨는 “어렸을 때 집안이 어려워 먹고 살기 힘들었다. 그때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날도 거리에서 고철을 줍다 인터뷰를 위해 복지센터를 찾은 김씨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모자를 눌러 쓰고 목토시를 한 채 두터운 옷차림이었다.
인천 동구 송림동에서 태어난 김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9세 때부터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성냥팔이로 연명하는 등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냈던 김씨는 20세 때 미추홀구 주안3동으로 이사해 정착했다.
김씨는 37세 때부터 아내와 고물상을 운영하면서 사거나 주운 고철을 현대제철과 주물공장에 팔아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5년만에 13억짜리 부도를 맞고 전 재산을 잃었다.
1년여 동안 힘들게 살다가 주변 지인의 도움으로 고물상을 다시 시작한 김씨는 악착같이 일했다. 김씨는 고철을 팔아 번 돈을 주택경매 사업에 투자해 재산을 다시 불렸다. 월세방 생활을 청산하고 38평짜리(125㎡) 단독주택도 장만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당장 끼니를 잇기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쌀 기부를 시작했다. 그게 25년 전인 1993년이다.
김씨는 첫 기부를 지금도 기억한다. 당시 김씨는 10㎏짜리 쌀포대 3포를 주안3동사무소(현 주안3동행정복지센터)에 전달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행복을 처음 접했다.
매년 기부수량을 늘려 현재는 연간 10㎏짜리 쌀포대 124포(300여만원 상당)를 기부하고 있다. 설과 추석에 각각 62포씩 동행정복지센터에 전달한다. 이 쌀은 주안 3동에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진다. 김씨가 25년 동안 후원한 쌀만 2000포대가 넘는다.
김씨는 2008년부터는 고물상을 접고 주택경매 사업만 했다. 고물상 일을 돕던 큰아들이 그만두면서 환갑이 지난 김씨 부부 둘이서는 고물상을 운영하기 힘들어진 탓이다. 이후에는 거리에서 고철과 폐지를 주워 모은 돈으로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김씨는 “나이
|
그는 “동사무소에 쌀포대 기부하는 것 이외에 개인적으로 라면 등을 후원하는 것까지 합치면 기부하는 돈이 한해 한 500만원쯤 된다”며 “빡빡한 살림이지만 절약해서 살면 남을 충분히 도우면서 살 수 있다”고 했다.
김씨가 고철·폐지를 줍기 위해 거리에 나서는 시간은 매일 오전 3시30분이다. 집에는 오후 8시나 늦을 때는 10시쯤 들어간다. 하루 18시간 가량을 고철과 폐지 줍는 일로 보내는 셈이다.
“새벽에 일찍 나와야 고철·폐지를 많이 주울 수 있어요. 고철이 나오는 곳이면 인천지역 어디든지 가요. 큰 돈은 아니지만 제가 기부하는 쌀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삶의 희망을 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