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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말이다. 류근일 전(前) 조선일보 주필이 “보수이념의 해체, 수구냉전사고 반성 운운은 보수의 자살이자 자해”라고 주장한 것을 반박하면서 나온 발언인데, 한국당 내에서도 새로운 보수 이념·가치 정립의 필요성이 제기된 셈이다.
하지만 한국당은 홍준표 전 대표의 말대로 “나라를 통째로 넘겼다”고 평가받을 만큼 국회의원 총선·대통령 선거·지방선거를 내리 패배하고도 아직 새로운 이념·가치를 확립하고 있지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또 김 원내대표를 포함한 바른정당 복당파 중심으로 “계파투쟁이 아니라 노선투쟁을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친박(박근혜)계 김진태 의원 등이 “평등과 평화를 강조하는 걸 보니 더불어민주당이 부럽느냐”고 반발하는 등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아 보인다.
◇현재 20%대 득표 한계…진보 가치 포용해야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을 거치면서 “더이상 박정희 시대 산업화·반공주의가 먹히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아직도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이어가는 일부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세를 결집해도 홍 전 대표와 김문수 전 서울시장 후보가 대선·지선에서 얻은 20% 초반 득표수준이 한계라는 분석이다. 외연 확장을 위해서는 기존 진보의 가치라고 평가받는 ‘평등·분배·평화’ 등도 적극 포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토니 블레어 전(前) 총리의 ‘제3의 길’에 막혀 기를 펴지 못하던 2000년대 영국 보수당의 노선 변화다. 2005년 38세에 불과한 나이에 당수로 낙점된 데이비드 캐머런은 ‘온정적 보수(Compassionate Conservatism)’를 기치로 내세웠다.
진보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보수당 간판에 내건 것으로 당내 강경파 반발이 상당했다. 그는 기후변화나 동성애자 인권문제 등 보수가 부정적으로 대하던 이슈에서도 무조건 반대만을 외치지 않았다.
결국 ‘보수당 개혁’과 ‘따뜻한 보수주의’를 앞세워 보수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캐머런은 2010년 총선에서 13년 만에 노동당을 꺾고 정권을 탈환했다. 지난해 프랑스 대선에서 승리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국내 일부에서 분석하는 중도보다는 보혁(保革) 이념을 극복한 온건보수에 가깝다.
마크롱은 유럽연합 잔류와 자유무역, 개방경제를 내세우면서도 문화적 다원주의를 강조하는 등 프랑스식 ‘제3의 길’을 제시해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런 점이 지금의 한국당 일부 의원에 비견할 만한 극우 성향 국민전선의 마리 르펜을 이기는 발판이 됐다.
◇“시장경제 노선만으론 소외계층 못 보듬어”
국내에서는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때 박 전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아젠다 선점이 대표적인 보수이념 재확립 사례로 꼽힌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의 무한경쟁을 내세우는 이미지가 강했던 보수가 ‘경제민주화’ 깃발을 꼽은 것은 당시 여야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현재는 “문재인 정부는 경제민주화와 소득주도성장을 실현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경제민주화 의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고, 오히려 한국당 측에서 “문 정부의 토지공개념 강화, 경제민주화 강화 등의 내용은 자유시장경제 포기 선언과 다름없다”며 날을 세우는 형국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누구 아이디어로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경제민주화를 당시 새누리당이 선점한 건 뼈아팠다”며 “진보 이슈를 보수에서 가져가 버리니 우리로서는 이슈파이팅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더 이상 동서 냉전사고 중심으로는 보수가 재기하지 못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새롭고 참신한 인물은 물론 그들을 뒷받침해 줄 수 있을 만한 이념적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남북 해빙무드 상황에서 평화체제가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데 수구·냉전적 보수 사고는 이제 떼어 내야한다”며 “경제문제와 관련해서 완전한 자유시장경제 노선만 가지고는 우리 사회 소외계층을 보듬을 수 없다. 경제정책에서 진보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통해 당의 강령과 정책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당 싱크탱크 등에 외부 인물을 수혈하면 훨씬 건강한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 역시 “한국당은 이제 정책·이념적인 부분에서 그랜드플랜이 필요하다”며 “그랜드플랜에는 노선변경 문제도 들어가는 것으로,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신속하게 발표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