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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생산적 금융’…90조원中 대출에 98% 쏠려

박일경 기자I 2018.05.09 06:00:00

관계형금융 지분투자비율 0.66%…기술금융은 2% 그쳐
투자부문 합계액 1조7462억…2%도 안돼 “대출중심 여전”

(자료=금융감독원)
[이데일리 박일경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생산적 금융’ 규모가 90조원에 육박한 가운데 시중은행이 취급하는 생산적 금융의 약 98%가 대출에 쏠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업계에서는 은행여신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생산적 금융 실적이 양적으로 팽창하기는 했지만 은행권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생산적 금융에 나선다면 단순 대출이 아닌 기업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차피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대출에 집중돼있어 경기순환 상 침체기에 기업구조조정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은행권이 ‘리스크 관리 강화→여신 회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근원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韓 금융사 간접금융 심사기능 취약”

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의 관계형금융 잔액은 5조921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에 기록한 4조2043억원보다 무려 40.8%(1조7162억원) 늘어난 액수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대출 증가율이 7.4%인 점을 감안하면 거의 6배 수준이다.

작년 말 투·융자를 합친 기술금융 누적 순증잔액도 83조3070억원에 달한다. 이른바 ‘생산적 금융’ 실적은 89조228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관계형금융에서 이뤄진 지분투자는 392억원으로 전체 잔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66%에 불과하다. 기술금융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아 기술기반 투자는 1조7070억원으로 2.05%에 머물렀다. 기술금융 대출 누적금액과 비교해도 2.09%에 그쳤다. 관계형금융과 기술금융에서 저금리 융자가 아닌 투자 부문 합계액은 1조7462억원으로 ‘생산적 금융’ 실적의 약 1.96%로 2%가 채 안 된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간접금융 심사기능이 취약하고 직접금융 시장도 발달하지 못해 혁신형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의 창업과 발전, 신규 고용의 창출, 중소기업의 대기업화를 통한 경제 활력 증진 증이 미진하다”고 진단했다.

관계형금융은 은행과 기업의 장기신뢰 관계를 통해 장기대출, 지분투자 및 컨설팅 등을 제공하고 기업의 사업성과를 공유하는 제도다. 기존의 계량정보뿐 아니라 비계량정보를 포함한 모든 기업정보를 종합 판단해 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장기(3년 이상)로 지원하고 회계, 법률 등 경영컨설팅 서비스를 폭넓게 제공한다.

은행이 대출 취급 시 대표자의 도덕성·경영의지, 업계평판, 거래신뢰도, 사업전망, 채무상환능력, 노사관계의 안정성 등 비계량정보로 기업현황을 분석하는 까닭에 부동산·임대업 비중이 높은 중기대출에 비해 도·소매업, 서비스업 등 다양한 업종으로의 자금공급이 활성화되고 있다. 실제 관계형금융에서 제조업 비율은 48.9%로 일반 중기대출(34.9%) 보다 기반산업에 대한 자원배분에 힘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술금융도 ‘창업 7년 이내, 매출액 100억원 이하’ 초기기업 비중이 지난 2016년 36.3%에서 2017년 46.3%로 급증하는 등 질적으로 성숙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은행권, 新기술기업 지분투자·직접투자 늘려야”

현재와 같은 저금리 대출에 기대는 ‘생산적 금융’ 정책은 결국 여신만 확장하는 모양새여서 불황 장기화로 인한 기업구조조정 이슈가 다시 불거지면 잠재적 부실 요인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송두한 NH농협금융지주 산하 NH금융연구소장은 “지금처럼 대출 위주의 혁신·벤처 중소기업 금융지원은 경기침체 시 은행의 중기대출 리스크 관리가 강화되면서 ‘비올 때 우산을 빼앗는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말 관계형금융의 평균 대출금리는 3.58%로 전체 중기대출 평균금리(3.68%)보다 0.1%포인트 낮다. 기술금융 대출은 일반 중소기업대출과 비교해 금리를 0.23%포인트 인하하며 한도도 1억6000만원 확대하는 등 실질적 금융 편의를 제공한다. 이 같은 순기능에도 생산적 금융의 질적 개선을 위한 정책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제기된다.

관계형금융의 지분투자는 지난 2015년 15건, 금액으로는 189억원이던 것이 2016년 29건, 397억원으로 늘어나는 듯하다가 작년에는 건수는 29건 그대로였으며 금액은 392억원으로 되레 줄었다.

송 소장은 “은행권이 생산적 금융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100조원에 근접하는 실적에서 여신이 90%를 훌쩍 넘는다”며 “10% 미만인 혁신·벤처 기술기업에 대한 투자로는 일자리 창출 효과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은행권이 신기술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 및 직접 투자를 늘려 은행과 중소·중견기업이 상생하는 동반성장 모델을 모색해야 할 시기”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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