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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 제약업 도약하라]⑤M&A 꺼리는 토종 제약사

강경훈 기자I 2016.08.13 07:00:00

대물림 많은 국내사…"회사 매각은 가문 팔아먹는 짓"
현재 상태에 안주하려는 경향 커
덩키 치울 골든타임 놓칠까 우려

[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지난 2009년 미국 화이자가 와이어스를 680억달러(약77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와이어스는 류마티스 생물학적제제 엔브렐, 폐구균백신 프리베나, 항생제 자이복스 등 혁신적인 신약을 비롯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센트륨, 애드빌, 챕스틱 같은 일반약이나 의약외품 등 다양한 제품을 보유한 회사였다. 이들 제품은 현재 화이자의 ‘대표 선수’로 자리잡았다. 일각에서는 ‘화이자가 와이어스를 인수하지 않았으면 현재의 위치는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해외에서는 이런 대규모 인수합병이 빈번하지만 국내에서는 유례를 찾기힘들다.

◇녹십자의 일동 M&A 시도, “바람직한 모델될 뻔”

지난해 2월, 일동제약(000230)의 지분 29.36%를 확보하고 있던 녹십자(006280)는 일동제약의 사외이사로 녹십자 측 인사를 선임해 줄것을 요구했다. 적대적 M&A 시도라는 말이 돌았다. 이어진 일동제약의 거부와 백기사 확보 등 우여곡절 끝에 녹십자의 인수합병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외부에서는 ‘국내 제약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M&A가 실패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제너릭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국내 제약사들끼리는 인수합병을 해도 큰 시너지를 낼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주력품목이 ‘완벽하게’ 겹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십자와 일동제약의 경우는 다르다. 녹십자는 혈액·백신제제가 강점이고, 일동제약은 일반의약품부터 전문의약품·의약외품·건강기능식품·화장품·음료까지 품목이 다양해 두 회사가 서로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안 돼”

119년 역사의 국내 제약사는 오너2세를 넘어 3세로 경영권이 넘어가고 있다. 녹십자, 동아쏘시오홀딩스, 국제약품, 유유제약 등이 이미 3세 경영체계이거나 작업이 진행 중이다. 처음부터 전문경영인 체제였던 유한양행이나 SK·LG·CJ 등 대기업이 제약업에 진출한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전부가 가족회사로 봐도 틀리지 않다.

그러다 보니 경쟁사에 회사를 넘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한 중견 제약사 2세 경영인은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세운 회사를 자식 대에서 넘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조상 뵐 낯이 없는 일’”이라며 “회사 문을 닫으면 닫았지 남에게 넘기는 일은 절대 안 된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본처럼 덩치 키워 R&D 주력해야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일본의 사례를 꼽는다.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를 키우고 연구개발에 집중해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2005년 탄생한 아스텔라스제약은 야마노우치제약과 후지가, 2007년 탄생한 다이이찌산쿄는 다이이찌제약과 산쿄가 합쳐져 생긴 회사다. 미쓰비시다나베제약의 경우 1990년대부터 5개의 제약사가 순차적으로 합쳐져 만들어졌다.

신약개발에 성공한 다케다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잇달아 경쟁력 있는 제약사를 인수합병해 강력한 파이프라인을 확충했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연구개발→신약 성공→수출→재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제약업이 발달할 수 있다”며 “가족경영 중심의 소규모 중소제약사 중 상당수는 현재의 상태에 안주하려는 성향이 있는데 그러면 발전은커녕 결국 도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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