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부러지는 해법은 없었다. 어느 정도 경기부양책이 필요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제 체력이 약해진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수술하고 동시에 갑작스러운 충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대외 리스크 관리에 집중해야 할 때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연구부 연구위원,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지상 좌담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세계 경제의 위기는 어느 정도 수준인지.
△이근태) 세계 경기가 이미 하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세계 경제 여건이 올해가 더 안 좋을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 개선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중국에 대한 불안으로 금융시장 급변하고 있고 실물경기가 완만하게 둔화되고 있다. 미국도 지난해 고용이 회복되면서 소득이 늘어나는 선순환 흐름은 어느 정도 한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실업률이 완전고용 수준인 5%까지 떨어지면서 고용이 늘어나는 속도가 떨어졌다.
△이준협) 세계적으로 금융 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 침체됐던 경기가 회복세를 타는 듯하다가 2012년부터 유로존 재정 위기 등을 거치면서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저성장 국면이 굳어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처럼 경기가 갑자기 훅 꺼지는 상황은 아니지만 회복세가 미약한 장기부진이 이어져 ‘L자형’ 저성장이 이어질 것을 보인다.
△전성인) 저성장 문제가 심각하다. 이는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화되는 고령화때문이다.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동시에 고령화가 진행된 적이 없다. 베트남도 20년 후에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고 한다. 고령화 문제가 커지다보니 미래 대비차원에서 돈을 쓰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성장이 둔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황세운)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진 부분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직전과 유사하다. 금융위기당시 2개월 전에는 외국인이 코스피시장에서 33거래일 매도를 했다. 이번에는 38일이라는 장기간 동안 외국인 순매도가 이어졌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위기가 온다는) 강력한 시그널일 수도 있다. 글로벌 사이클로 보면 금융위기 이전에 미국을 중심으로 부채가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은 괜찮은데 미국 이외 지역은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역만 바뀌었을 뿐이지 글로벌 전반적으로 경기주체들의 부채가 굉장히 빠르게 늘고 있다.
- 저유가의 원인과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김성태) 저유가 현상은 현재 신흥국 등 세계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상당부분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저유가는 기름이 한방을 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구매력이 늘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글로벌 수요둔화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 유가 하락으로 생산 비용 감소분을 설비투자에 활용하거나 채무를 갚는 데 써야 한다.
△이준협) 저유가 자체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유가 급변동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저유가가 지속되면 생산단가를 떨어뜨리면서 생산을 늘릴 수 있어 긍정적이지만,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커지고 급격하게 떨어지면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 저유가의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유가 하락으로 줄어든 생산비용을 연구개발 투자로 돌려 제품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황세운) 개인적으로 유가는 현재 저점 근처에 근접해 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머지 않은 시기에 하락이 마무리되면서 가격 흐름의 전환이 발생할 수 있다. 수요는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어렵지만 공급은 가능하다. 미국 등 서방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산유국들은 국가가 공급 통제 가능하다. 현재와 같이 국제유가가 20달러대에서 형성되는 초저유가 상태에서는 정치적 요소의 개입가능성이 크게 확대된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원유공급에 자율적인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겠지만 유가의 상승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유가 상승 전환에 대한 암묵적인 협조 체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본다.
- ‘화이트스완’ 시대를 돌파할 해법은.
△김성태) 세계 경기 둔화는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충격이 왔을 때 이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있는지가 중요하다. 기업, 가계, 국가 등 경제 주체의 건전성 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동시에 한국 경제 내부적으로 인구 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하락, 좀비 기업 장기화 등 고질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해결되지도, 그렇다고 한꺼번에 곪아터지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불확실한 대외 환경에 기업 경쟁력마저 악화된 상황에서 구조개혁을 성공하지 못하면 과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보다 더 혹독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근태) 단기적인 처방에 치중하는 것은 국가부채만 누적되는 등 오히려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 구조개혁과 규제완화, 성장 먹거리 창출 등을 통해 근본적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내수분야를 중심으로 한 서비스산업 성장에서 답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규제 완화,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의 비효율적 측면을 제거해서 생산성·효율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준협)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신(新) 넛 크래킹’에 빠졌다. 중국의 경기 둔화세 못지 않게 중국 정부가 ‘신창타이(뉴노멀)’로 대표되는 구조개혁을 통해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기술 경쟁력에서도 바짝 추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에 부품소재를 많이 수출하는 한국 기업의 수출 기회가 점점 줄 수밖에 없다. 일본도 엔화 약세로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높은 기술력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더 혁신적인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 한국 기업은 기술력을 높이고 고부가가치 제품을 강화해 수익성을 확보해야한다.
△전성인) 거시정책의 큰 방향을 제대로 설정해야 할 때다. 그래야 비가 오더라도 서두르지 않고 대응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적극적으로 금리를 인하하고 정부는 원화 평가절하를 유도해야 한다고 본다. 동시에 서비스발전법, 원샷법 통과에만 목을 매달 때가 아니라 가계부채 등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