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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와 우성' 100년 뛰어넘어 글씨로 교감하다

김용운 기자I 2015.09.22 06:16:10

''추사 김정희 우성 김종영: 불계공졸과 불각의 시공'' 전
독창적 자기 서체 남긴 김정희
조각에 추사정신 새긴 김종영
두 예술가 작품 50여점 동시에 전시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서 10월 14일까지

추사 김정희의 글씨 ‘우향각’(사진=학고재갤러리).
우성 김종영의 글씨 ‘자호삼매지실’(사진=김종영미술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바깥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하지만 마냥 그 흐름에 편승할 수는 없었다. 민족이 지닌 고유의 예술세계를 구현하려 한 목표를 포기할 수는 없는 까닭에서다. 추사 김정희(1786~1856)와 우성 김종영(1915~1982). 시대는 달랐지만 두 사람의 고민은 다르지 않았다. 모방에서 벗어나 창조로 나아가고 싶어했던 두 예술가는 서예를 통해 맥을 이뤘다. 당대의 시류를 거슬러 추사체란 독창적인 서체를 남긴 추사와 그의 글씨를 보며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데 힘을 얻은 우성은 운명처럼 한 공간에서 만나 서로의 접점을 보여준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오는 10월 14일까지 여는 ‘추사 김정희, 우성 김종영: 불계공졸(不計工拙)과 불각(不刻)의 시공(時空)’ 전은 추사의 서예작품과 우성의 서예·조각·드로잉·스케치 등 50여점을 비교하며 동시에 볼 수 있는 자리다.

추사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서화가이자 성균관 대사성과 형조참판까지 지낸 관료였다. 20대에 청나라의 지식인과 교류하며 금석학의 대가가 됐고 자신의 호를 딴 서체까지 완성한다. 정치적인 부침을 겪으며 신산을 맛본 삶을 살았지만 말년에는 ‘세한도’ 등의 걸작을 남기며 ‘잘되고 못되고를 굳이 따지지 않는다’는 ‘불계공졸’의 경지에 올랐다.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인 우성은 광복 후부터 1980년 서울대 조각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후학 양성과 작품활동에 매진했다. 특히 1953년 영국 런던 테이트갤러리에서 열린 ‘무명 정치수를 위한 기념비’ 국제공모에 ‘나상’을 출품해 52개국 3246명의 작가 중 입상자 140명에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 조각가 중 최초로 국제전에서 수상한 것이다. 전후의 혼란한 상황에서도 추상조각의 세계적 흐름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던 덕분이다. 우성은 조각재료의 특성을 살려 절제미를 표현한 ‘불각의 미’를 추구한 조작가로 평가받는다. 스스로를 ‘각도인’이라 칭하며 동양적 세계관을 접목한 추상조각을 남겼다.

우성 김종영 ‘자화상’ (사진=김종영미술관)


이번 전시는 조각가 우성이 쓴 글씨작품이 계기가 됐다. 우성은 휘문고보 2학년이었던 1932년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람회 중등부 습자부문에서 전국 장원을 차지할 정도로 서예에 출중했다. 그러나 서예가 예술로서 지위를 잃어가면서 우성은 일본 동경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한국 추상조각의 길을 열어가게 된다. 특별한 것은 조각가 우성이 주변에 알리지 않고 서예작업을 병행했던 것이다. 그 작품들이 우성 사후에 세상에 나왔고, 특히 유고 중 ‘완당과 세잔느’라는 글이 추사와 우성의 연결고리가 됐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우성은 이 글에서 “완당의 글씨는 투철한 조형성과 아울러 입체적 구조를 가지고 있고 동양 사람으로는 드문 적극성을 띠고 있다”고 평했다. 완당은 추사의 또 다른 호다. 추사가 남긴 서예작품을 모범 삼아 우성 자신도 작품방향을 모색한 것이다.

형태의 자유로움을 추구함과 동시에 구조에 엄격했던 우성 조각의 모태가 바로 추사의 글씨였다는 사실을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우성이 남긴 스케치와 드로잉 등을 통해 추사가 구체적으로 우성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살필 수 있게 했다.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대표는 “추사는 중국 서예, 우성은 서구 미술을 수용하면서도 한국의 미와 정신을 재해석해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받았다”며 “단색화를 통해 한국미술이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는 요즘 그 조형성의 뿌리가 되는 서예를 화두로 두 작가의 걸작을 한꺼번에 만날 기회”라고 전시의의를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학고재갤러리가 2010년 가을 현대작가 11명과 한국 고미술 12점을 짝지어 한국 현대미술 속에 면면이 흐르는 민족 정체성을 드러낸 ‘춘추’ 전의 연장으로 기획했다.

우성 김종영의 조각 ‘76-19’(사진=김종영미술관).
추사 김정희의 글씨 ‘천기청묘, 매화동심’(사진=학고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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