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77년]②체면 아닌 실리·은둔 아닌 소통..'이재용의 삼성' 온다

이재호 기자I 2015.03.20 06:00:00

루프페이 M&A로 발뗀 혁신..''이재용폰'' 갤S6로 방점
석화·방산 정리 결단력 빛나..부드러운 스킨십 경영 ''장점''

[이데일리 이재호 기자] “삼성이 다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시대에 걸맞게 외부 기술이나 아이디어에도 관심을 가져야죠.”

최근 기자와 만난 삼성 최고위 관계자는 현재 맞닥뜨린 한계를 직시해야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한다’는 만능주의 강박에 시달리던 삼성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 있다. 구태에 얽매이지 않는 개방적인 비즈니스 및 소통 전략으로 삼성을 보다 솔직하고 대범한 기업으로 변모시켜 나가고 있다.

◇ ‘이재용폰’ 갤S6로 ‘변화 신호탄’ 쏘다

이 부회장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애플과 중국업체에 밀려 추락한 삼성 스마트폰의 위상을 되찾는 일이었다. 삼성전자(005930)가 스마트폰 신제품 갤럭시 S6와 갤럭시 S6 엣지를 공개한 직후 외신들은 “삼성이 드디어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켰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그러나 갤럭시 S6를 준비하는 과정은 전혀 ‘삼성’답지 않았다. 디자인 혁신을 위해 전작과 달리 메탈 소재를 사용했으며, 그동안 고수해 왔던 탈착식 배터리를 포기하고 무선충전 기능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숙적인 애플 아이폰과의 유사성 논란이 불거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갤럭시 S6 공개를 목전에 두고 미국 루프페이(LoopPay)를 인수해 마그네틱 기반의 모바일 결제 기능을 추가한 것도 극적이었다. 제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어떤 시도도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자체 역량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태도에서 벗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M&A 시장에서 공세적으로 돌아선 것도 달라진 부분이다. 이 부회장은 강점을 극대화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M&A 카드를 적극 사용하고 있다. 올해 들어 공식적으로 밝혀진 M&A 건수만 4건이다. 한 달에 한 곳 이상의 기업을 사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 명분 대신 실리, 은둔 대신 소통

삼성전자가 지난 2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한 갤럭시 S6 공개 행사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행사 진행 시간이 40분 정도로 예년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으며, 무대에 오르는 삼성전자 임원들은 경쟁 제품인 아이폰6와의 직접적인 성능 비교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전의 삼성전자 행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이에 대해 이영희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상품전략팀장(부사장)은 “기존에는 한국적인 정서와 예의를 강조했지만 이번에는 짧고 활기차게(Crispy) 진행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장황한 설명보다 특징만 요약해 간결하게 소개하고, 내세울 만한 장점은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솔직하게 과시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표방하는 이재용식 경영의 한 단면이다.

이와 함께 이 부회장은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룹의 미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석유화학 및 방위산업 계열사는 과감히 정리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아울러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의 임금을 동결해 긴장감을 높였지만 성과보수를 강화해 성과주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으며, 실적 고공행진을 벌이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비대해진 조직도 재정비해 효율성도 극대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체면을 차리느라 우물쭈물하거나 조직 구성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필요한 조치는 과감하게 추진하는 실리 경영의 사례들이다.

이 부회장은 ‘은둔의 제왕’으로 불렸던 이건희 삼성 회장과 달리 소통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 13일 열린 삼성전자의 정기 주주총회 현장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 부회장은 등기이사가 아니라 직접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권오현 부회장 등 각 부문별 대표이사들이 차례로 경영전략을 소개하고, 주주들과 마주볼 수 있도록 좌석 배치를 바꾸는 등 주총 분위기가 주주친화적으로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재계 인사는 “뛰어난 글로벌 감각과 부드러운 스킨십은 이 부회장의 최대 장점”이라며 “21세기의 삼성에 꼭 필요한 덕목을 갖춘 이 부회장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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