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석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최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지난 1988년 대한투자신탁을 시작으로 금융업계 커리어를 시작한 서 회장은 미래에셋증권에서 마케팅·리테일·퇴직연금 관련 업무를 한 뒤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을 지냈다.
증권과 운용 업계를 두루 거친 그는 지난해 1월 금융투자협회 회장 자리에 오른 뒤 국내 연금 투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단 신념 하에 ‘디딤펀드’ 출시를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왔다. 원리금보장형 상품과 타깃데이트펀드(TDF) 중심의 실적배당형 상품 위주의 퇴직연금 시장에서 중간단계인 중위험·중수익의 자산배분 펀드로 전환하는 것이 국민들의 안정적인 노후 자산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이란 게 그의 신념이다.
서 회장은 이를 위해 ‘디딤펀드’라는 운용업계 공동의 자산배분펀드 브랜드를 만들고, 지난 9월 25개 자산운용사가 디딤펀드란 브랜드를 달고 자산배분 펀드를 출시하도록 이끌었다. 디딤펀드는 주식과 투자부적격채권 편입 비율을 각각 50%, 30% 미만으로 자산을 배분해 운용하며, 변동성은 낮추면서도 예·적금보다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 회장은 아울러 국민들이 금융투자를 통해 안정적인 자산 기반을 만들 수 있도록 장기 투자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것과 함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가입 대상을 미성년자로 확대해 ‘주니어 ISA’을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서 회장과 일문일답이다.
|
△디딤펀드의 성과는 5년 정도가 지나면 연금 시장에서 경쟁력이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한다. 디딤펀드는 시장이 좋을 때에는 시장을 그만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연금 외 시장에서는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시장이 하락할 때 방어를 잘 하니까, 매월 적립식으로 수년간 투자를 하는 연금 시장에서는 장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규모가 큰 기금들이 디딤펀드와 같이 주식과 채권을 분산해 운용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국내에선 퇴직연금 상품도 그때 그때의 수익률을 강조하는데
△연금 사업자들이 투자자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유인하는 측면이 있다. 국내에서 퇴직연금 제도가 시작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 실적배당형 비중은 1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은 리스크를 부담하면서 적극적으로 자산을 운용하겠다는 투자자들인 만큼, 연금 사업자들은 이들 외에 원리금보장형에 머물러 있는 투자자들에게 안정적인 상품으로 노후자금을 마련해 줄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데 이 10%의 경쟁에만 몰두하고 있는 셈이다. 연금 사업자들의 반성도 필요한 대목이다.
-원리금보장형에 머물러 있는 퇴직연금이 디딤펀드로 옮겨갈 것으로 보나
△퇴직연금 적립금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은행들도 더 이상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디딤펀드의 판매 채널을 초기에는 증권사로 한정했지만, 당연히 은행으로까지 판매 채널을 확장할 계획이다.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와 맞물리면서 은행 입장에서도 더 높은 수익률을 쫓아 은행에서 증권사로 옮겨가는 고객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보수적인 은행 특성상 리스크가 큰 상품은 적합하지 않고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하는 디딤펀드가 최적의 상품으로, 은행으로까지 판매 채널이 확대되면 디딤펀드에 대한 수요가 더 많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근본적으론 연금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 같다
△여유자금을 갖고 하는 투자는 코인과 같이 다소 변동성이 큰 자산에도 투자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노후를 준비하는 연금 자산에 대해서는 복리의 효과를 인식하고, 변동성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 국민연금을 봐도 어떨 때는 플러스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마이너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변동성이 크지 않도록 계속 관리해 나가면서 장기적으로 수익을 내는 거고, 이는 국민연금뿐 아니라 세계 모든 연금의 운용 방식이다.
-퇴직연금을 기금화해 국민연금에 사업자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도 나오는데
△현재 퇴직연금의 90%가량이 원리금보장형에 머물러 있어 이를 운용해 성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단 문제인식에서 나오는 논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현재 퇴직연금 운용을 신경쓸 게 아니고 국민연금 자체를 개혁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당장 국민연금 모수를 개혁하고 수익률을 높여 국민연금이 고갈되지 않고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게 더 중요한 문제다. 또 국민연금이 퇴직연금을 운용하게 되면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들의 대주주는 국민연금이 되고, 결국 민간시장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본다.
-대안이 있나
△퇴직연금 성과를 높이기 위해 이뤄지는 거라면, 현재의 모순적인 디폴트옵션 제도를 개선하는 게 우선이다. 국내에 디폴트옵션을 도입할 때 업권간 이해관계 때문에 원리금보장형을 포함하기로 하면서 미국과 같은 원형의 디폴트옵션이 아닌 ‘한국형 디폴트옵션’이 탄생했다. 원리금보장형을 선택하면 사실 디폴트옵션의 의미가 퇴색되는 건데, 이러한 모순적인 형태를 정리하는 게 우선 과제다.
-장기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도 필요할 것 같다
△장기투자에 대해서 특정 유형의 펀드를 비과세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투자 기간에 따라 세액을 공제해주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주택도 장기간 보유하면 공제 혜택을 받는 것처럼, 보유 기간에 따라 공제를 해주는 방식이 비과세 펀드를 만드는 방안보다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
-ISA에 대한 혜택도 확대돼야 한다고 보나
△정부도 ISA 비과세 한도 확대를 추진하고 있고, 야당에서도 납입액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 야당 모두 ISA를 국민 자산을 형성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생각은 공통된 만큼 협의를 기대한다. 여기에서 나아가 미성년자도 가입할 수 있는 주니어 ISA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사회가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데, 자산이 후대로 넘어가지 않으면 그 돈은 늙고 잠드는 것과 다름 없다. 주니어 ISA를 고령 세대의 여유 자산을 젊은 세대로 옮겨가도록 하는 방안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같이 젊은 세대에 이전된 자산은 학자금이나 사회진출 기본 자금 등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임기 동안 추진할 중점 과제는
△금융투자업계의 숙원인 법인지급결제 허용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대형 증권사의 경우 자기자본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져 있고 해외 사업을 많이 하고 있다. 이들이 해외로 나가서 폭넓게 활동하기 위한 지원 차원에서도 지급결제 허용이 필요하다. 또 현재 저축은행 등도 지급결제 업무를 하고 있는데 이들과 비교해 대형 증권사의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발전해야 한단 점을 고려해 법인지급결제 실행을 위해 지속적으로 협의해나갈 것이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고려대 경제학 학사 △고려대 경영대학원 재무관리학 석사 △대한투자신탁 영업추진부 △미래에셋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사장 △미래에셋증권 퇴직연금추진부분 대표사장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 사장 △미래에셋자산운용 마케팅·ETF 총괄사장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