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선심 공세에 지방 재정이 골병드는 모습이 숫자로 확인됐다. 행정안전부가 수립한 2024~2028년 중기지방재정계획에 따르면 내년도 총지출 예산 527조 1269억원 중 의무지출 예산은 359조 5531억원으로 68.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의 68.2%보다 0.6%포인트 오른 것이며 2012년(58.6%)에 비하면 13년간 상승폭이 10.2%포인트에 이른다. 전국 243개 광역·기초 자치단체가 무상 복지와 국고보조사업 등을 이유로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재정 비중이 70% 돌파를 눈앞에 둔 셈이다. 지방 자치제 도입 30년이 다 돼 가지만 지방 재정은 ‘자치’를 잃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근거다.
지방 재정의 좀비화 원인은 초등학생 용돈 등 선심을 남발하면서 지자체들이 살림살이를 방만하게 한 탓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2010년대 초반부터 급격히 불어난 복지비 부담이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이 불붙으면서 잇따라 도입·확대된 무상보육·무상급식·기초연금·누리 과정 등 4대 무상복지가 지방 재정을 크게 압박했다는 것이다. 이들 복지는 정부의 국고 보조금에 비례해 지자체도 의무적으로 비용을 내는 매칭 방식이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가 “정치권이 복지 정책을 내놓을 때는 재원을 검토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방 재정의 독립성 약화는 국가 균형 발전에 역행한다는 점에서도 앞날이 우려스럽다. 지방 소멸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의무 지출에 발목 잡힌 지자체들이 민원 대응, 인프라 개선 등을 위해 쓸 예산이 극히 한정될 수밖에 없어서다. 곳간이 정치권과 중앙 정부에 좌우되는 신세를 면치 못하면서 지역 발전과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도 한계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재원 보강을 위해 올해 23.2%에 불과한 지방세 비중을 30%까지 높여줘야 한다지만 일각에서는 지자체 살림살이의 선(先)구조조정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골병든 지방 재정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재정이 독립성을 잃은 지방 자치는 ‘무늬만 자치’일 뿐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퍼주기에 앞장섰던 정치권도 힘을 합쳐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