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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를 발견한 해병대원에게는 14박 15일 포상휴가를 내걸기도 했다. 해당 부대 측은 “포상 휴일은 병사들에게 큰 자발적 동기가 됐으며 시신을 본 젊은이에게 심리적 위로도 되고 작전 목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독려책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물에 들어갈 일이 거의 없는 포병대대가 수색 작전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수색 당국의 한 관계자는 “스스로 인지하고 알아서 행동하는 경찰이나 소방관과 달리 군인은 명령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에 순발력 있게 행동하기 어려워서 수중 수색에 깊게 관여하는 건 안 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소방청 대변인실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해병대측에) 도보로 물 밖에서 수색하라고 했다. 도보 수색 구역을 협의했을 뿐, 구명조끼나 안전장치 없이 물에 들어가라고 협의한 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해당 부대 관계자는 “사실상 물이 가슴 높이까지 찰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병사는 없었다”며 “그냥 본인이 알아서 조절해서 깊은 곳 안 가면서 수색하는 거였다”는 입장이다.
사고 전날까지 예천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빠른 유속으로 인해 장갑차도 5분 만에 철수한 이곳에 장병들은 구명조끼를 비롯한 구호 장비를 갖추지 않은 채 삽 한 자루만 들고 현장에 투입됐다.
사고는 이날 오전 9시 3분에 일어났다. 수색 1열에 있던 채 상병과 한 병장, 또 다른 일병 등이 물에 빠졌고, 2열에 있던 이들이 1열 세 명에 삽을 받쳐주다 함께 물에 빠졌다. 그 중 수영을 할 줄 아는 이들은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채 상병은 수영을 할 줄 몰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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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일 한 목격자는 “빨간 해병대가 떠내려간다. 물 밖에서 달리기하는 속도로 떠내려가고 있다”며 119에 신고했다. 소방 당국은 오전 9시 8분께 경찰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으나 해병대 측은 당시 이 신고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 신고 주민은 “내성천은 모래 강이라서 보통강과는 다르다“며 ”계곡처럼 갑자기 3m씩 아래로 빠지는데 그 아래가 펄이라서 강가에서나 도보 수색을 해야 했는데 왜 가운데까지 들어가는지 지켜보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당시를 전하기도 했다.
아울러 해병대 측이 실종 수색 실적을 높이고자 실종자가 많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로 구역을 배치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해병대 1사단 측은 “독립 기관인 해병대 수사단에서 수사 중인 사항이라서 임의로 답변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한편 지난 22일 채 상병의 영결식은 해병대장으로 엄수된 가운데 이 자리에는 유가족과 국방부 장관, 이종호 해군참모총장 등 주요 군 직위자와 국회의원, 지역기관장, 그리고 해병 1사단 장병 8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국방부와 해병대는 순직 장병에 대한 예우를 다하기 위해 일병에서 상병으로 1계급 진급을 추서했으며 병 계급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의 훈장인 ‘광복장’을 수여했다.
채 상병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