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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S17 도입 코앞인데...고금리저축성 계약 역마진만 2조

전선형 기자I 2022.06.09 07:00:00

과거 연금상품 7%대 금리 확정해 팔다 손해나
내년부터 현재 금리 적용해 계산...충당금 더 필요
RBC비율까지 떨어지며 수천억 채권발행 부담까지

[이데일리 전선형 서대웅 기자] 보험사들이 저축성보험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과거 7% 이상의 금리를 확정해 판매한 저축성보험에서 무려 2조원에 가까운 역마진이 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부터 도입될 새 회계제도(IFRS17) 상황에서는 과거 금리가 아닌 현재 기준에 맞춰 부채를 계산해야 한다.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최근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지급여력비율(RBC)까지 떨어지면서 회사별로 수천억대 채권발행 부담까지 떠안았다. 영업은 줄어들었는데 빚만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역마진 난 고금리계약…IFRS17에선 부채로 쌓여

지광운 군산대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생명보험사 이차역마진 규모는 2조2000억원에 달했다. 이차역마진이란 보험사가 고객에게 지급해야할 금리(적립금부담이율)가 보험사가 자산을 운용하는 이익률에 비해 높아 이자부분에서 손실이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해 9월말 기준 적립금부담이율은 4.03%고, 운용자산 이익률이 3.03%로 1%포인트 차이가 났다.

이차역마진이 나는 주된 이유는 보험사들이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까지 외형성장에 집중하면서 7%가 넘는 고금리 확정형 저축성보험을 대거 판매했기 때문이다. 확정형 저축성보험이란 은행의 예ㆍ적금처럼 기본금리를 정한 뒤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이며, 대체로 연금보험에 적용됐다. 2000년대 기준금리가 5.25%에 달했고, 은행들이 10%에 가까운 적금 금리를 주면서 보험사들도 경쟁적으로 높은 금리의 상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불티나게 팔렸던 고금리 확정형 저축성보험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는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IMF 이후 기준금리는 지속 하락했고, 특히 지난 2년간은 제로금리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험은 고객에게 보험료를 받아서 채권ㆍ주식ㆍ부동산 등에 투자해 운용을 한다. 운용수익으로 보험금을 지급할 재원을 마련하고, 마진도 남긴다. 하지만 현재 운용수익률로는 마진은 커녕 보험금 재원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금보험공사사가 지난 2016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당시 보험권 부채 527조원 중 확정형 금리를 주는 보험 부채 규모는 223조원으로 전체 부채의 절반에 가까웠다. 그 중 6% 이상 금리를 보장하는 확정형 고금리 부채 규모는 116조원에 달했다.

더 큰 문제는 IFRS17의 도입 이후다. 우리나라는 국제협약에 따라 2023년부터 보험사가 재무제표를 작성할 때, IFRS17 규정에 따르게 돼 있다. IFRS17의 핵심은 보험부채를 현재의 가격(시가)으로 산출해 반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험사가 현재 낼 수 있는 수익률이 2%라고 가정할 때, 과거 팔았던 7%의 고금리 계약 상품은 5%포인트 차이만큼 보험사가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이전까지는 보험금 지급 완료될 때까지 7%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가정하에 충당금을 쌓았다. 이렇게 되면 IFRS17 상황에서는 과거 고금리 계약으로 발생하는 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현재 보험사들은 낮은 금리의 보험을 팔아서 금리를 낮추는 방식, 일명 ‘금리물타기’를 하며 부담을 낮추고 있는 상태다. 계약이 소멸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고금리계약 부담은 계속될 예정이다.

노건엽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IFRS17 도입의 과도기 상황이라고 판단된다”며 “최근 금리가 높아지며 고금리 확정 상품 부담이 줄었다고 하지만, 향후 금리가 내려가면 또다시 문제로 불거질 것”이라고 말했다.

◆RBC비율하락으로 자본확충 부담까지

고금리계약으로 비용부담이 큰 상황에서, 보험사들은 RBC비율까지 하락하며 추가적인 비용부담까지 지게 됐다. 보험사가 금리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매도가능증권을 잔뜩 보유했는데 갑자기 금리가 오르면서 손실이 난 것이다. RBC비율은 하락했고, 보유하고 있는 자본도 줄어들게 됐다.

결국 보험사들은 자본을 끌어올리기 위해 유상증자를 비롯해 후순위채ㆍ신종자본증권(자본성증권) 등을 발행해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보험사들은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 등의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유상증자보다 빠르고 쉽게 자금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본성 증권의 높은 이자비용이 추후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현재도 보험사들은 높은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배당금을 부담하고 있다. 한화생명의 경우 지난해 신종자본증권 배당(채권 이자)은 960억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4206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순익의 4분의 1가량을 이자로 내고 있는 것이다. KDB생명의 경우 지난해 신종자본증권 배당액이 122억원으로, 지난해 총 당기순이익(232억원) 대비 50%를 차지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IFRS17이 사실상 6개월이 됐는데, 아직 제도정비도 안됐을 뿐더러 수치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며 “부채부담은 여전히 커지고 있고, 이로 인한 자본확충도 이뤄져야 하는 것도 IFRS17도입이 결정됐을 때인 10년 전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IFRS17

2023년부터 보험사에 적용되는 새 회계 기준. IFRS17 고객에게 돌려줄 보험금을 의미하는 보험 부채를 원가 방식에서 시가평가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시가평가 방식에서는 과거 판매한 고금리 확정 계약의 부채를 계산할 때도 현재의 낮아진 금리를 적용해야 하다 보니 부채 규모는 커지고 이에 대비해 쌓아야 할 책임준비금도 커지게 된다.

RBC

보험사 건전성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 가용자본/요구자본으로 계산되며 수치가 높을 수록 건전하다는 의미다. 보험업법에서는 100% 이상을 요구하고, 금융당국은 150%를 권고하고 있다. RBC제도에서는 자산은 시가, 부채는 원가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2023년부터는 부채도 시가로 평가하는 킥스(K-CIS)로 대체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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