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 A아파트 정문 앞에 난데 없이 쌓인 800여개 박스의 ‘택배탑’은 이번 택배기사들과 주민들간 갈등의 시작이었다. 택배기사들이 ‘문앞 배송’을 거부, “정문에 둘 테니 알아서 찾아가라”고 한 것. 입주자 대표회의가 이달 초부터 택배차량을 지상이 아닌 지하 주차장을 통해 다니도록 하자 택배기사들이 일종의 ‘보이콧’을 한 셈이다.
택배기사들은 “일반 택배차량(탑차)은 높이가 걸려 지하 진입이 불가능하고, 지하 진입이 가능한 저상차량은 화물을 내리기 위해 허리를 깊이 숙인 채 작업할 수밖에 없어 근골격계 질환에 걸릴 수밖에 없다”며 “주민 ‘갑질’에 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한 택배기사를 배제한 채 주민들과 저상차량 운행을 약속한 택배사에도 책임이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주민들은 단지 내 안전 때문에 내린 조치가 자칫 주민 이기주의로 비춰지고 있다며 불쾌함을 내비쳤다. A아파트 주민 B씨는 “작년 단지 내에서 택배차량에 어린이가 부딪칠 뻔한 걸 봤다”며 “사고가 나면 끝이기 때문에 일단 안전을 예방하는 것이 최우선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고덕동 A아파트 발 ‘택배 대란’의 파장이 심상치 않다. “택배기사에 대한 주민 갑질”이라는 의견과, “주민 안전이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의견이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특히 공동주택 내 택배는 물론 오토바이 기사들까지 ‘외부 손님’ 진입을 둘러싼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여타 수많은 단지에서도 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택배 물동량의 기하급수적 증가에 따라 이러한 갈등은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택배이용 횟수는 2010년 25.0건에서 2020년 65.1건으로 10년 새 두 배 넘게 늘어났다.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 1인당으로 좁혀 보면 같은 기간 48.8건에서 122.0건으로 3배 가까이 뛰었다. 즉, 4인가구 기준으로 환산하면 연간 317건, 휴일 빼고 가구당 하루 한 건씩은 택배를 수령하고 있고 그만큼 갈등의 불씨는 앞으로도 활활 타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시영 아주대 공학대학원 물류SCM학과 겸임교수는 “산업 급성장에 따라 언제든 벌어졌을 일인데 양쪽의 감정싸움 때문에 이성적인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며 “주민-기사 간 갈등만 부각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택배회사가 빠져 있다. 사실상 방관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사측이 적극 나서 해결을 도모하지 않으면 어느 단지에서든 이 문제는 또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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