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대란]①회사·주민 사이에 낀 택배기사들, 촛불 들었다

정병묵 기자I 2021.04.20 06:30:00

아파트 주민-택배·배달기사 갈등 터질 게 터져
택배 물동량 기하급수적 증가…계속 급증 중
"택배사, 방관 말고 해결 나서야…더 심해질 것"

[이데일리 정병묵 공지유 기자] 택배기사들이 촛불을 들었다. 지상 출입을 막는 아파트 입주민과 차량 교체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회사 사이에 끼인 택배기사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지난 14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 A아파트 정문 앞에 난데 없이 쌓인 800여개 박스의 ‘택배탑’은 이번 택배기사들과 주민들간 갈등의 시작이었다. 택배기사들이 ‘문앞 배송’을 거부, “정문에 둘 테니 알아서 찾아가라”고 한 것. 입주자 대표회의가 이달 초부터 택배차량을 지상이 아닌 지하 주차장을 통해 다니도록 하자 택배기사들이 일종의 ‘보이콧’을 한 셈이다.

택배기사들은 “일반 택배차량(탑차)은 높이가 걸려 지하 진입이 불가능하고, 지하 진입이 가능한 저상차량은 화물을 내리기 위해 허리를 깊이 숙인 채 작업할 수밖에 없어 근골격계 질환에 걸릴 수밖에 없다”며 “주민 ‘갑질’에 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한 택배기사를 배제한 채 주민들과 저상차량 운행을 약속한 택배사에도 책임이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주민들은 단지 내 안전 때문에 내린 조치가 자칫 주민 이기주의로 비춰지고 있다며 불쾌함을 내비쳤다. A아파트 주민 B씨는 “작년 단지 내에서 택배차량에 어린이가 부딪칠 뻔한 걸 봤다”며 “사고가 나면 끝이기 때문에 일단 안전을 예방하는 것이 최우선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고덕동 A아파트 발 ‘택배 대란’의 파장이 심상치 않다. “택배기사에 대한 주민 갑질”이라는 의견과, “주민 안전이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의견이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특히 공동주택 내 택배는 물론 오토바이 기사들까지 ‘외부 손님’ 진입을 둘러싼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여타 수많은 단지에서도 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택배 물동량의 기하급수적 증가에 따라 이러한 갈등은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택배이용 횟수는 2010년 25.0건에서 2020년 65.1건으로 10년 새 두 배 넘게 늘어났다.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 1인당으로 좁혀 보면 같은 기간 48.8건에서 122.0건으로 3배 가까이 뛰었다. 즉, 4인가구 기준으로 환산하면 연간 317건, 휴일 빼고 가구당 하루 한 건씩은 택배를 수령하고 있고 그만큼 갈등의 불씨는 앞으로도 활활 타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시영 아주대 공학대학원 물류SCM학과 겸임교수는 “산업 급성장에 따라 언제든 벌어졌을 일인데 양쪽의 감정싸움 때문에 이성적인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며 “주민-기사 간 갈등만 부각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택배회사가 빠져 있다. 사실상 방관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사측이 적극 나서 해결을 도모하지 않으면 어느 단지에서든 이 문제는 또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간 택배이용 횟수 추이(단위:건, 한국통합물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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