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의 주제로 쓴 글들은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들었다는 신화적 상상이 인공지능과 같은 현실의 물질로 어떻게 변신해가는지를 보여준다. 몇 천년 전 고전에서 이미 인공지능에 대한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황금비서’다. “감정을 지닌 지능, 음성, 힘이 장착되어” 있는 황금비서는 그야말로 고대인이 상상한 인공지능 로봇이다. 특히 “불멸의 신들에게 작품도 배워 알고” 있다는 묘사에서는 머신러닝과 딥러닝 기술에 대한 상상력의 단초도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피그말리온 신화에서는 “생명은 생명체에서만 나온다”는 고대인의 통찰을, 프로이트의 언캐니 이론과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에서는 육체의 상품화에 대한 저항을 엿본다. 이를 통해 인문학이 정신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의 물질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정신이나 관념에 치우친 인간성이 아닌 자기 몸을 일상에서 재발견”하는 것에 ‘포스트인문학’의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