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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전 활동을 앞세운 비영리단체 W재단은 지난달 암호화폐(토큰) ‘W그린페이’(WGP)를 발행한다며 투자자를 모집했다. 이들이 밝힌 가격은 WGP 토큰 하나당 2달러(약 2230원), 전체 시가총액(마켓캡)은 2500만달러(약 282억원) 규모다. 이용자가 전력 사용량 줄이기 등을 실천하면, 이를 통해 바탕으로 탄소배출권을 거래한 뒤 수익을 토큰으로 나눠주는 방식이라고 홍보했다.
2012년 창립한 W재단은 그간 국회나 지자체 고위 인사 등 정치권 인물과 연예인 중심 마케팅 속에 평가가 엇갈려왔다. 그러다 올해 들어 블록체인을 통한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나서면서,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취재 결과 이들의 사업 계획은 처음부터 현실성이 부족했다. 우선 가장 기본이 되는 탄소배출권은 기업체가 365일 전력사용량 등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토대로 부여받아 거래하는 것으로, 개인의 행위를 모아서 거래할 수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더해, 이들이 업무협약(MOU)이나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한 업체들과의 관계도 원활하지 못했다. WGP토큰을 실제 결제에 활용하는데 필수 요소인 전자지갑 개발 파트너 코나아이와는 아예 관계가 틀어졌고, 사회공헌 MOU를 체결했던 인터파크와도 이후 어떤 사항도 추진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일각에서는 투자 유치도 어그러졌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이욱 이사장을 비롯한 W재단 관계자들은 본지의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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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팔짱만 낀 채 방관하고 있다. 신기술·신산업이 등장하면 부작용을 해소하면서 건전한 생태계 육성을 지원하는게 정부의 역할일진대, 현 정부는 금융위원회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건 ‘암호화폐=악(惡)’이라는 프레임 속에 강건너 불구경하듯 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장이자 여당 소속인 민병두 의원은 “정부에 암호화폐 관련 의견을 주면 국회에서 입법 공청회 등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도통 연락이 없다”고 비판했고, 박성준 동국대 교수는 “ICO(암호화폐 공개 투자모집)가 국내에서 화두가 된 게 2년 가까이 됐지만 정부는 일을 전혀 안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그저 “국제 동향을 보며 천천히 결정할 것”이란 말만 되풀이한다. 국무조정실 산하 ‘가상통화TF’는 제대로 된 회의 한번 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번 등장한 기술은 대체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은 인류 역사상 입증돼왔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도 내부 문건에서 “암호화폐 시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공유했다. 그런 중에 업계에서 먼저 ‘제발 규제 좀 만들어달라’고 하는 이상한 상태는 또 해를 넘길 태세다. 정부에 ‘언제쯤 팔짱을 풀고 움직일 것인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