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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재는 2015년 미국 등 주요 6개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과 이란의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타결에 따라 이듬해 1월부터 대 이란 제재를 완화한 지 2년 10개월 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정부 시절이던 2015년 7월 타결된 이란 핵합의에 대해 이란이 핵프로그램 감축이라는 합의 조건을 어겼다고 주장하며 지난 5월 일방적으로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이어 금·귀금속, 흑연, 석탄, 자동차, 상용기·부품·서비스 수출 등의 분야에서 이란과 거래한 기업·개인을 제재하는 1단계 제재를 지난 8월 7일부로 부활시켰다. 이번에 복원된 2단계 제재는 이란의 원유, 천연가스, 석유화학 제품, 항만 운영·에너지·선박·조선 거래, 이란 중앙은행과의 거래 등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이번 제재는 이란의 생명줄과 다름없는 원유 거래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란의 기간 산업체인 주요 국영회사들이 제재 리스트에 오르고 이란산 원유, 천연가스, 석유화학 제품을 수입하는 외국 기업들도 미국의 제재대상이다. 미국은 이를 통해 이란의 원유 수출을 ‘0’으로 줄여 이란 경제를 고사시키겠다고 압박해왔다.
이번 제재에 동참하는 국가들은 이란산 원유 및 석유제품 수입 중단으로 자국 경제에 큰 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다만 미 정부는 이번 제재가 국제 유가 등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에 따른 개별 국가의 타격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한국을 포함한 8개국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했다. 이란산 원유 수입량을 지속적으로 감축하는 것을 조건으로 해 6개월(180일)간 한시적으로 원유를 계속 수입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겠다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지난 2일 콘퍼런스콜에서 8개국에 대한 ‘일시적 면제’ 방침을 밝히면서 이들 나라는 이란산 원유를 계속 수입할 수 있도록 면제 조치를 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외가 인정되는 8개국의 경우 원유 지급액을 역외 계좌로 송금해 이란이 인도주의적 거래나 제재 대상이 아닌 제품 및 서비스 영역의 거래를 위해서만 송금액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대 이란 제재 복원 시 국내 기업의 피해가 우려됨에 따라 제재 복원 조치가 이뤄져도 석유화학업계에 긴요한 이란산 콘덴세이트(초경질유)의 수입 지속과 한국·이란 결제시스템 유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일단 국내 정유업체들은 SK에너지, SK인천석유화학, 현대오일뱅크 등으로, 이미 원유 수입선을 다변화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란산 콘덴세이트를 수입하는 SK에너지는 작년 5월부터, SK인천석유화학은 올 8월부터 미국 제재를 의식해 이란산 원유를 들여오지 않고 있다. 대신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산 등의 수입량 늘렸다. 현대오일뱅크도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고 멕시코 등 북남비 쪽에서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한화토탈, 현대케미칼도 이미 지난 7월 선적을 마지막으로 이란과의 계약을 중단한 상태다. 다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콘덴세이트를 들여올 수 있는 대형 시장을 잃었다는 점과 이번 경제 제재가 향후 국제유가 등락에 불확실성을 더욱 높였다는 점 등은 우려할 대목이다. 한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이란산 원유는 초경질유로 화학제품을 생산하는데 필수인데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 국내 업체들의 선호도가 높았는데 이번 제재로 한국은 좋은 수입원을 잃게 됐다”며 “수입원 다변화로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제재가 장기화될 경우 원가 부담을 높이는 요인이 되어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예외국으로 인정을 받았다면 앞으로 산업부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의주시하고 그 다음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란 경제제재 여파가 당장 국내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장기화할 경우 이란의 비어가는 곳간과 줄어드는 수주로 악영향을 피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국내 건설업체 경우 주력인 중동의 수주규모는 줄고 있는데다 이란의 정치적인 리스크까지 더해져 수주활동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