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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애물단지된 ‘무늬만 P2P’…관리는 나몰라라

박종오 기자I 2018.06.01 06:00:00
금융업 종사자들이 지난 5월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핀테크(금융+기술) 관련 행사에 참석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50대 개인 투자자 김 모 씨는 연 수익률 18%를 보장한다는 P2P 대출 상품에 투자했다가 애태우고 있다. 김씨가 투자한 것은 관광호텔 운영 업체에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대출 상품이다. 그러나 업체가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해 선순위 담보권자인 금융회사와 투자를 중개한 P2P 업체가 담보로 잡은 부동산을 공매에 부치기로 한 것이다. 자칫 낙찰가가 대출액에 못 미치면 후순위 담보권자인 김씨 등 투자자는 투자금을 날릴 수 있다.

최근 P2P 대출 상품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았다는 피해자가 부쩍 늘고 있다. P2P 대출은 돈이 필요한 사람과 빌려주려는 사람을 온라인에서 직접 연결하는 신종 금융 서비스다. 은행 등 기존 금융기관을 끼지 않아 중간 비용을 줄이고 은행 문턱이 높은 서민·영세 사업자 등도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P2P 대출이 투자자에게 ‘사기’라는 말까지 듣게 된 것은 구멍 뚫린 제도 때문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P2P 대출은 자금 중개업체가 투자금을 빼돌리기나 투자자에게 대출 원리금을 돌려막기 손쉬운 구조다. 개인과 개인 간 직접 금융 거래를 가능케 한다는 원래 취지와 달리 사실상 ‘무늬만 P2P’라는 얘기다. P2P 업체의 부동산 건축 자금(PF) 대출 등 고위험 대출 부실이 다수 투자자 피해로 이어지는 것은 이런 허술한 제도가 업체의 도덕적 해이와 맞물렸기 때문이다.

실제 P2P 업체는 시중은행에 회사 계좌를 개설하고 그 아래 투자자가 입금할 수 있는 개인별 가상계좌를 만들어 투자금을 모은다. 돈이 쌓이면 P2P 업체가 은행에 대출 계약서 등을 제시하고 P2P 업체 자회사인 대부업체를 거쳐 대출자에게 투자금을 전달한다.

문제는 대출을 중개하는 P2P 업체가 돈을 유용해도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A업자에게 100만원을 대출한다며 투자금을 모아 B업자에게 빌려주거나 이름만 있는 가짜 회사에 돈을 입금해도 투자자가 확인할 수 없다.

투자금을 돌려받는 과정은 관리가 더 취약하다. 대출자가 상환한 원리금은 일단 P2P 회사의 은행 계좌에 들어온 후 다시 개인 투자자 계좌로 입금하는 구조다. P2P 업체가 한쪽에서 발생한 연체를 다른 쪽 회수금으로 돌려막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를 방지할 제도 보완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금융당국이 가진 감독 수단도 초라하다. 새로운 금융 서비스인 P2P 금융을 여태 법 테두리 안에 두지 않아서다. 작년 2월부터 강제력 없는 행정 지도 성격의 ‘P2P 대출 가이드라인’을 도입해 시행하고, 올 3월부터는 P2P 업체 자회사인 대부업체를 금융위원회에 등록하게끔 한 것이 전부다. 업계 자정을 위한 자율 규제를 하겠다는 P2P 업체 협회도 갈등을 겪으며 최근 셋으로 쪼개진 상태다.

현재 국회에 발의한 P2P 대출 관련 법률안은 4개(법 개정안 포함)다. 하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여전히 계류 중이다. 국내에 P2P 업체를 처음 설립한 것이 2006년(머니옥션)이지만, 10년 넘게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투자자 눈물을 막으려면 서둘러 입법화 논의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P2P 대출 관련 주요 발의 법률안 (자료=국회입법조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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