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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예술계에 불편주는 'e나라도움' 제도 개선해야

이민주 기자I 2017.06.07 06:00:00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 관장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 명예회장] 요즘 국고보조금 사업을 신청하거나 지원받는 문화예술인들에게 번거로운 일이 생겼다. 바로 2017년 1월부터 시행된 e나라도움 때문이다.

e나라도움은 국고보조금의 예산편성·교부·집행·정산 등의 전 과정을 전자화, 정보화하여 통합·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정부는 시스템 구축 목적에 대해 보조금 중복·부정수급을 방지하고 대국민 보조금 이용 편의성과 업무 효율화를 위해 도입했다고 밝혔지만 문화예술계는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는 행정력 낭비의 대표적 사례로 꼽고 있다.

예술가, 사립미술관 관장, 학예사, 전시기획자에게는 공포의 시스템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e나라도움은 인터넷 뱅킹을 해야 하는 프로그램으로 신청 단계부터 공인인증서를 요구한다. 또 개인이나 단체에 보조금을 직접 교부하지 않고 한국재정정보원의 예탁계좌를 거치도록 이중 장치가 마련되어있다. 시스템에서 사용매뉴얼을 배포하고 있지만 절차가 복잡해 문화예술인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를 들면 사립미술관의 큐레이터는 전시장에서 작가들과 함께 작품 설치를 하다가도 지출 건이 생길 때마다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시스템에 접속해 집행정보 등록, 집행요청, 보조금 집행(이체)‘의 3단계를 거쳐 계좌이체를 해야만 한다.

게다가 시스템 자체는 24시간 사용 가능하지만 시스템 내의 은행 관련 업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만 가능하다. 국고보조금 사업을 신청, 집행, 정산하는 업무를 맡은 큐레이터에게 골치 아픈 행정업무가 한 가지 더 늘어난 셈이다. e나라도움 사용법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이유로 사업신청을 하지 않거나 선정된 이후에도 중도 포기하는 미술관도 생겨나고 있다.

전남 진도의 나절로미술관의 경우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미술관 연계프로그램’ 사업에 선정되고도 e나라도움 시스템을 활용하지 못해 결국 사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미술관 전문인력도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는 상황인데 하물며 회계정산에 익숙하지 못한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지속적으로 보완 및 업데이트되고 있으나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인해 자주 오류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던 화면이 사용자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늘은 안 보이거나 기존에 받은 매뉴얼과 실제 화면이 달라져 매뉴얼을 보고 업무를 진행하는 담당자가 멘탈 붕괴에 빠지게 된다. 얼마 전 만났던 한 예술가는 필자에게 오류가 잦은 e나라도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으며 지역문화재단 시각예술지원 담당자가 보내온 메일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e나라도움이 자주 업데이트되는 관계로, 기존에 메일로 보내드린 매뉴얼과 실제 화면이 달라진 점이 발견되어 오늘자로 업데이트된 매뉴얼을 보내드립니다. 앞으로도 변경사항이 생길 경우 메일을 통해 업데이트된 매뉴얼을 보내드릴 예정이오니 진행하실 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해결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e나라도움시스템 대표전화로 상담원에게 문의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담원과 연결되기까지 장시간이 소요되거나 연결이 안 되고 끊어질 때가 많다. 상담원이 해결하지 못하면 업무포털 내 ‘묻고 답하기’에 문의 글을 올려야 하는데, 글을 올린 후 답을 받기 까지 대체로 2~3일 정도 기다려야 한다.

긴급한 예산처리를 해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오류가 발생하지 않기만을 그저 바랄 뿐이다.

지원자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고통을 주는 e나라도움은 해외문화선진국의 지원자를 배려한 공공지원제도의 편리함과 크게 대조된다. 필자는 2016년 7월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렸던 호주출신 바디페인팅 아티스트 엠마 핵의 개인전에 호한재단으로부터 전시비용 일부를 지원받았다. 호한재단은 사업의 최종 진행내용 및 결과물, 예산사용 건에 대한 증빙 이미지 자료만 요청했다. 당시 필자와 미술관 직원들이 영수증 첨부도 요청하지 않은 지원방식에 놀라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새롭다. 최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으로 돌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e나라도움을 개선하는 일이 문화예술계 ‘팔길이 원칙’을 실천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비나미술관 관장>

▶ 이명옥 명예회장은...

-성신여대 졸업. 소피아국립예술대학원 회화 석사. 홍익대 미술대학원 예술기획 석사 / 국민대 미술학부 겸임교수(2002~현재). 사비나 미술관 관장(1996~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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