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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족쇄 풀린 618개 계열사, 문턱낮은 골목상권부터 진입할 것"

유근일 기자I 2016.06.13 07:00:00

대기업 기준 하향 조정에 중소기업들 울상
중소기업계 "소규모 사업 분할로 중소-소상공인 업종부터 발 들일 것"
중견기업도 경쟁 심화에 긴장

[이데일리 유근일 채상우 박경훈 기자] “지금도 대기업 계열사 또는 대기업 출신의 임원이 근무하는 회사를 통해 중소기업 사업영역을 침투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대기업 기준이 완화되면 중소기업들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게 될 것이 뻔합니다.” (제조업체 A사 대표)

정부가 지난 9일 대기업 기준을 자산총액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상향조정하면서 중소기업계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대기업에서 벗어난 기업들의 무차별적인 골목상권 진출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기준 변경에 따라 중견기업으로 분류된 기업들이 무분별하게 중소기업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의 발표에 따라 대기업에서 벗어난 자산 5조~10조원 사이의 37개 그룹·618개 계열사들은 기업형슈퍼마켓(SSM)을 통한 골목상권 진출과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상의 공공조달 시장참여가 가능해진다.

홍정호 중소기업중앙회 성장지원부장은 “지난 2009년 대기업 기준이 2조원에서 5조원으로 상향됐을 때 대기업에서 벗어난 그룹들이 골목상권 또는 공공조달시장에 위장 진출해 중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며 “저성장시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대기업에서 벗어난 기업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중소기업 업종에 진출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원샷법 적용 중견기업 신규사업 진출 줄이을 것”

지난 4월 대기업으로 신규 지정된 카카오는 이미 택시, 대리운전, 미용실 등 대표적인 골목상권 분야에서 스타트업 및 소상공인의 영역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림 역시 이미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계란유통업종에 진출해 소상공인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고 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대·중견기업 모두 중소기업적합업종에 진출할 수는 없지만 대기업이 빵집을 차리는 것과 중견기업이 차리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윤리적 문제로 눈치를 보던 카카오와 하림과 같은 기업에게 이번 정부 발표내용은 골목 상권의 침투 활로를 더욱 열어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더 큰 문제는 사업재편에 나설 기업들이다.

정부 발표에 따라 대기업에서 벗어나게 되는 37개 그룹 가운데 동국제강(001230)·세아제강(003030)(철강), 중흥건설·현대산업(012630)개발(건설), 한솔(종이·목재), 한진중공업(097230)(조선), 태광·금호석유(011780)화학(화학) 등 8개 그룹은 원샷법 적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원샷법은 공급과잉 업종 기업이 신속하게 사업 재편을 할 수 있도록 인수합병(M&A) 등 사업 재편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상법·세법·공정거래법 등의 관련 규제를 특별법으로 한 번에 풀어주는 법이다. 원샷법 적용을 받는 중견기업들은 조세특례법상의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주주총회 없이도 소규모 분할로 신규 사업 진출이 가능해 진다.

업계 관계자는 “원샷법이 시행되면 대기업들이 보유한 골프장이나 건물을 활용해 진입이 손쉬운 식음료 사업 등의 분야에 우선 진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3년간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법이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자회사를 통해 사업을 확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국제강은 시스템통합(SI) 계열사 디케이유엔씨를 통해 육류 및 식자재 도매업종에 진출했다. 태광그룹도 와인판매점 메르뱅, SI 계열사 티시스를 통해 식음료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하림이 디디치킨, 맥시칸과 같은 프랜차이즈 계열사를 통해 자사의 육계를 판매하고 카카오가 수리견적 서비스, 농업법인, 영어학원 등의 비주력 계열사를 필두로 골목상권에 진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중견·중소기업, 대기업 계열사 재진입 따른 경쟁 심화 ‘긴장’

기존 중견·중소기업군에 있던 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다. 자본력과 브랜드파워, 막대한 유통망을 가진 대기업군 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넘어오면서 더 공격적으로 시장을 잠식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한 중소 SI업계 관계자는 “그간 대기업으로 분류돼 공공 조달시장에 참여하지 못했던 디케이유엔씨와 티시스가 다시 공공 조달시장에 들어올 수 있게 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페인트 업계도 KCC(002380)가 중견기업으로 편입되면서 술렁이고 있다.

노루페인트(090350) 관계자는 “가장 큰 경쟁사인 KCC가 중견기업으로 분류돼 노루페인트는 긴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건축용 페인트 시장에서의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삼화페인트(000390)도 “체감할 수 있는 영향은 없다”면서도 “대기업 당시 적용받던 규제가 완화되면서 KCC의 가용자원이 늘어나 공격적인 투자 및 사업진출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자료=공정거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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