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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시인이 종이와 연필 한 자루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언제나 경이로운 일이었다. 조각은 왜 저런 상태가 될 수 없을까 의문을 가져왔다.”
내년 2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여는 ‘현대차 시리즈 2015: 안규철: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전은 근래 열린 현대미술전시 중 ‘사유’와 ‘참여’가 가장 두드러진 전시다.
흰색이 도드라진 전시장 내부는 전반적으로 담백하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화려한 작품보다 맥락과 의미를 생각해야 하는 작품이 대다수다. 어떤 작품은 고개를 숙여야만 볼 수가 있다. 바닥에 인공적으로 설치한 연못이기 때문이다. 연못 안에 금붕어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이 작품의 이름은 ‘아홉 마리 금붕어’. 금붕어들은 물속에 같이 있지만 9개로 나뉜 동심원 안에 각각 고립돼 있다. 서로 만나지 못하는 금붕어의 유영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서로 간에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도시인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피아니스트와 조율사’는 시간이 소재다. 피아니스트가 정해진 시간에 전시장에 나타나 같은 곡을 연주한다.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반복되지만 피아노는 천천히 제 기능을 잃어간다. 피아노 속에 선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해머가 하루에 하나씩 사라지기 때문이다. 전시가 끝날 무렵에는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두드려도 선율은 울리지 않는다. 얼핏 인간이 죽음을 향해 소멸해가는 과정과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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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명의 책’은 관람객이 완성하는 작품이다. 인터넷을 통해 사전에 참여를 신청한 관람객이 전시장 안에 마련한 ‘필경사의 방’의 책상에 앉아 1시간씩 주어진 책을 필사한다. 카프카의 ‘성’, 이상의 ‘날개’, 김승욱의 ‘무진기행’, 이스마일 카다레의 ‘꿈의 궁전’ 등 국내외 문학작품을 손으로 쓰는 작업이다. 1000명의 손글씨로 만든 필사본은 전시가 끝난 후 한정 부수로 인쇄해 필사에 참여한 관람객에게 발송할 예정이다.
전시제목은 시인 마종기가 1980년 발표한 동명시집에서 따왔다. 안 작가는 “조각에서 물질의 무게를 덜어내고 물질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며 “견고하고 오래가는 재료보다 견고하고 깊이있는 생각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라 여긴다”고 전시의도를 설명했다. ‘식물의 시간 II’ ‘사물의 뒷모습’ ‘기억의 벽’ ‘침묵의 방’ 등을 포함해 설치 8점을 선보였다. 역시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것의 맥락을 살피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예술이란 결국 눈으로 볼 수 없는 진선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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