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관광 온 대만인 제이사 천(여·27)씨는 명동지하쇼핑센터로 지하철을 타러 왔다가 낭패를 당했다. ‘명동역지하쇼핑센터’와 ‘명동지하쇼핑센터’를 구분하지 못한 탓이다. 천 씨는 “지하철을 찾아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한참을 헤맸다. 외국인들은 헷갈리기 쉬운 만큼 안내표시가 좀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지하는 온라인 게임에 자주 등장하는 ‘던전(Dungeon·지하감옥)’과 닮은꼴이다. 미로처럼 얽혀 있고 곳곳에서 장애물이 길을 막는다.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은 물론 서울에 거주하는 시민들도 지하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 지하철역과 연결된 지하도가 특히 그렇다. 체계적인 도시계획 아래 지하가 개발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시설을 확충하고 지하도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난개발이 이뤄진 때문이다.
서울 시내 지하는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연말쯤 지하철 1호선 종각역과 5호선 광화문역 사이에 지하연결통로가 조성되고, 2017년에는 세종대로 지하공간과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서울시 신청사 등을 잇는 지하연결통로가 조성된다. 강남구 삼성동 영동대로 지하는 고속철도(KTX),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남부급행철도, 지하철 2호선·9호선 등이 엮인 복합환승센터로 개발되면서 지하 상권 조성 사업도 추진된다. 또한, 서초구는 2호선 강남역과 9호선 신논현역 사이에 축구장 5배 크기의 지하도시 건설을, 송파구는 제2롯데월드를 중심으로 잠실역 부근의 지하 구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점포수도 늘어나고 있다. 작년말 현재 서울 메트로·도시철도공사·메트로9·신분당선 등(코레일 제외)이 관리하는 지하철역 내 점포는 1664개다. 2012년부터 작년까지 3년간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가 늘린 점포만 239개나 된다. 지하철공사들은 수익확대를 위해 역사 내 점포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서울시설관리공단이 관리하는 29개 지하도상가에선 2773개 점포가 영업 중이다.
◇ 미로에 장애물까지 서울 지하는 ‘지하감옥’
공간 확충과 점포 증설로 서울 지하는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지만 이용자 편의를 위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강남고속터미널 지하도 상가를 종종 이용한다는 김 모씨(여·25)씨는 “안내표시판 글자크기가 작아서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상점 간판들이 많아 안내 표시판과 헷갈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등포지하도상가에서 만난 네팔인 타파산도스(33)씨는 “영등포지하도상가 2번 출구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친구는 영등포역 2번 출구에서 기다려 한참을 헤맨 적이 있다”며 “역과 지하도상가가 연결돼 있어 출구 이름도 같을 줄 알았는데 달라서 불편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의 ‘도시철도 정거장 및 환승편의시설 보완 설계 지침’에는 안내·상업 간판디자인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다. 서울메트로·도시철도공사는 점포 간판 디자인 매뉴얼을 갖고 있지만 구체적이지 않은데다 점포주들이 요구하면 손쉽게 변경이 가능하다.
점포주들이 상품을 보행로에 쌓아두거나 입간판을 설치,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영등포지하도상가에서 만난 김모(42)씨는 “통화하면서 걷다가 화장품 가판대에 부딪쳐 멍이 든 적이 있다”며 “보행로에 쌓인 물건들은 지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적치선을 표시하고 이를 넘어서 물건을 전시하거나 적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관리인원이 부족해 수많은 점포들을 일일이 통제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정교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지하도내 점포는 잉여공간을 활용한 것이지, 지하도를 만든 주목적이 아니다”라며 “간판의 경우 상업용과 정보용을 구분할 수 있게 표준을 만들어 점포들이 준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