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표 재건축 단지 밀집지역인 개포지구에서 최씨를 포함한 주민 약 4500가구의 대이동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
이주 대열의 선두에 선 곳은 총 1970가구가 살고 있는 개포시영 아파트다. 이 아파트 재건축 조합이 지난 4월부터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조합원의 69%가 이른바 ‘깜깜이 선이주’에 찬성했다.
통상 재건축사업에서 주민 이주는 구청이 관리처분계획(조합원 재산가액과 추가분담금을 확정하는 절차)을 인가한 이후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조합은 인가 신청 1~2개월 전인 오는 11월 열리는 조합원 총회를 거쳐 기존 전·월세 계약 기간이 끝나는 집부터 순서대로 세입자를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조합 관계자는 “임대차 계약이 만기된 조합원들에게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전세금을 지원해 주고 집을 먼저 비우게 하는 방식으로 이주 기간을 한 두 달 줄여보려는 것”이라며 “오는 11월 총회에서 조합원 의사를 물어보고 최종 선이주 여부를 결정하려 한다”고 말했다.
개포시영 단지 뒤로도 대규모 이주 행렬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사업 속도가 비슷한 인근 개포주공2·3단지도 모두 올해 말에서 내년 초 사이 주민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 3개 단지를 합하면 비슷한 시기에 짐을 꾸릴 집이 무려 4530가구에 이른다.
현지 부동산업계에서는 올 가을부터 순차적으로 이주가 시작돼 내년 봄이 되면 이사 수요가 봇물을 이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찌감치 인근 지역의 전·월셋집을 물색하는 세입자도 나오고 있다. 개포주공2단지 인근 K공인 관계자는 “아이들 교육 문제로 반드시 주변에 집을 구해야 하는 주민들은 미리부터 움직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영세 세입자 3000가구, 전세난 불 붙이나
문제는 이들 3개 단지 거주자의 70% 이상이 영세 세입자라는 점이다. 어림잡아 3000가구 이상으로 추산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개포동의 전용면적 60㎡ 이하 재건축 아파트 전세 시세는 평균 9372만원. 같은 지역 일반 아파트 전셋값(평균 3억7296만원)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개포시영 단지 내 K공인 관계자는 “세입자 대부분이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감내하고 저렴한 주택을 찾는 신혼부부나 노년층”이라고 말했다.
개포동은 물론 강남구 일대에서도 이처럼 값싼 전셋집은 턱없이 드문 형편이다. 이들의 동시다발적인 이주가 주변 지역의 저가주택 전세난에 불을 붙이고, 서울 외곽지역의 국지적인 임대료 상승까지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양승훈 현대공인 대표는 “그나마 저렴한 편인 개포·포이동 일대 다가구주택 전셋값도 전용 66㎡형 기준 1억5000만~2억원 선”이라며 “전·월세 수요가 인근 양재동이나 경기 성남시와 용인시 수지 등지의 저가 빌라나 다세대주택으로까지 옮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주 수요가 자연스럽게 분산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개포주공2단지는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하는 추가분담금이 최고 1억원 가까이 올라 주민 반발이 커지고 있고, 개포시영은 단지 내 상가와의 소송 문제 등이 남아 있어서다. 단지별로 사업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뜻이다.
관할 행정기관인 서울시는 서민 주거 안정 차원에서 인위적으로 이주 시기를 분산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각 단지가 관리처분 인가를 신청하면 자체 심의위원회에서 재건축 시기 조정이 필요한 지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