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담합한 정유사의 휘발유를 넣은 차를 타고, 담합한 이통사의 휴대폰으로 담합한 보험사 직원과 상담을 한다. 담합한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산 집에는 담합한 가전회사의 TV와 냉장고, 세탁기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금껏 적발된 담합행위에 연루된 일부 제품을 단순히 열거한 것일 뿐인데, ‘담합공화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다양하고 풍성하다.
기업들간의 담합은 우리 사회 곳곳에 시장 경제를 좀먹는 독버섯으로 불리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병폐다. 때가 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몇몇 기업들을 집어내 ‘과징금 철퇴‘를 내리지만, 담합이라는 독버섯은 어느샌가 다시 싹을 틔우고 자생한다.
대한민국 곳곳에 담합이 만연하게 된 것은 고착화된 독과점 구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업종별로 주요 기업 2~4곳이 독과점 형태로 시장을 싹쓸이하다 보니 그들만의 ‘짬짜미’가 손쉬워졌다는 것이다.
최근 KDI(한국개발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제조업 업종별 상위 3개사의 시장점유율은 2002년 48%에서 2009년 55%까지 올라갔다. 예컨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가전 시장,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3개사가 나눠 먹는 통신 시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수백억원의 과징금 철퇴를 맞는 단골 손님이지만 그렇다고 담합 행위를 줄이기는 커녕, 매년 과징금 액수만 불리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권의 CD(양도성예금증서)금리 담합 의혹이 터져나와 또 한번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금융권이 대출 이자의 기준이 되는 CD금리를 담합 행위를 통해 조정하면서 국민들에게 추가 이자 부담을 지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분통을 터뜨리는 국민들이 부지기수다.
금융소비자원은 24일 CD금리 담합으로 은행권을 비롯한 금융권에 CD연동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연간 1조6000억원의 이자부담을 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금융권에 다달이 내는 이자 부담에 허우적 거렸던 국민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형언하기 힘들 정도다.
이같은 기업들의 담합 행위는 국민의 호주머니를 갈취해 기업들이 자기 배만 채웠다는 비난에서 비켜서기 힘들다. 그리고 이는 가뜩이나 팽배해 있는 재벌과 대기업들에 대한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배경이 되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난 23일 방송에서 “기업의 존립 목적이 수익 창출에 있다 하지만, 이런 목적만 추구하다 보면 기업은 돈을 벌어도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며 “이런 기업은 ‘사회악’”이라고 꼬집었다.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지고 담합이 성행하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 당하기만 했던 소비자들은 이제 집단 소송을 준비하는 등 나쁜 기업에 맞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젠 담합 기업들에 대한 ‘일벌백계(一罰百戒)’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