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의 IT 버블 붕괴, 2001년의 911 테러,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이 발생한 뒤 `마에스트로` 그린스펀의 FRB는 금리를 낮게 유지해 경기 부양을 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연준이 2004년 6월 말까지 연방기금금리를 46년 최저 수준인 1%로 유지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저금리가 가져온 과잉 유동성 등 경제 부작용이 가시화하면서 연준은 2004년 6월 말 본격적으로 금리인상 행진의 닻을 올린다.
그로부터 1년 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연준의 금리인상 행진이 끝나지 않았다고 평가하는 와중에 피셔 총재는 갑자기 금리인상 행진의 종착이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 발언은 월가를 포함한 국제 금융시장에서 초미의 관심을 모았고 미국 국채와 주가는 급등했다.
연준이 2005년 6월까지 1년 동안 금리를 계속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장기 국채수익률이 오히려 하락하는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 때문에 그린스펀까지 이를 `수수께끼(conundrum)`라고 부르던 상황에서 초짜 지역은행 총재가 금리인상의 막바지를 거론하고 나선 것. 피셔에게 많은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8이닝` 발언으로 인상적인 신고식을 치른 리처드 피셔 댈러스 연방은행 총재의 화술이 갈수록 흥미를 더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 현지시간) 피셔 총재가 전일 미국의 경기 침체를 예상하는 사람들을 동화 `곰돌이 푸(Winnie the Pooh)`에 나오는 침울한 당나귀 `이요르(Eeyore)`에 빗댔다고 보도했다.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알렉산더 밀란이 쓴 `곰돌이 푸`는 꿀단지만 보면 이성을 잃는 낙천적인 곰 푸, 양보하기 좋아하는 분홍 돼지 피글렛,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말썽을 일으키는 호랑이 티거, 그런 티거가 불만인 토끼 래빗 등 푸와 그의 친구들이 벌이는 크고 작은 사건을 소재로 한 아동 소설의 고전이다.
이중 당나귀 이요르는 가장 비관적인 캐릭터로 유명하다. 이요르의 성격을 뜻하는 `Eeyorish(걱정거리를 안고 사는)`는 단어가 지난 2003년 영국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등장했을 정도. 피셔 총재는 이요르를 통해 미국 경제 일각에서 일고 있는 경기 침체 우려가 과도하다는 뜻을 상징적으로 주장한 셈이다.
`이요르`는 `8이닝`이란 비둘기파 발언 이후 피셔 총재가 줄곧 강력한 인플레이션 파이터, 즉 매파의 면모만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과도 맥을 같이 한다. 피셔 총재는 지난해 10월 4일 "미국의 인플레이션 수준은 FRB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의 끝에 다다랐다"고 말해 미국 주가 급락을 촉발시켰다.
그는 이틀 뒤인 10월 6일에도 금융 시스템을 심혈관 계통에 비유하며 또 한 번 인플레 퇴치 의지를 주창했다. 피셔는 "자본 흐름은 미국 경제의 생혈(生血)이며 연준의 가장 큰 임무는 미국식 자본주의라는 심장 혈관을 정상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책 당국자들은 인플레이션 바이러스가 미국 경제와 금융 시스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며 "동맥 경화증이 혈관을 막거나 순환 계통을 방해하도록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8이닝`으로 시작해 `동맥 경화증`과 `이요르`까지 넘나드는 피셔의 화술은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전염성 탐욕(Infectious Greed)` 등 수많은 명언을 남긴 그린스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을 법 하다. 물론 FRB를 18년간 통치한 그린스펀과 일개 지방은행 총재인 그의 발언이 갖는 무게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비교할 수는 없으나 피셔가 FRB 내부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입지를 쌓아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보수적인 FRB에서 톡톡 튀는 발언으로 입지를 굳힌 또 하나의 인물은 바로 벤 버냉키 현 연준 의장이다. 버냉키는 연준 이사가 된 지 불과 3개월 만인 지난 2002년 11월 "연준의 금리인하 정책이 경기를 제대로 부양하지 못할 경우 연준은 국채 직매입 등으로 금리 인하를 대신해야 한다"고 말해 금융시장을 깜짝 놀래켰다.
이후에도 버냉키는 `인플레이션 목표제` 설정을 줄기차게 주장하며 이슈를 선점하는 능력을 보였고, 결국 그린스펀의 후임자로 뽑혔다.
입담 못지않게 피셔의 경력도 화려하다. 올해 56세인 피셔는 하버드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고 스탠포드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획득했다. 스탠포드 MBA 입학 전에는 영국 옥스포드에서 라틴 아메리카 정치학을 주제로 2년간 공부하기도 했다.
스탠포드 졸업 후 월가 투자은행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만에 입사한 그는 카터 정권에서는 재무부 차관보를 지내며 행정부에 입문했다. 지난 1997년부터 2001년까지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를 지내며 NAFTA 협상을 주도했다.
이후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 클린턴 정권에서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던 토마스 맥라티가 공동설립한 자문회사 키신저 맥라티 어소시에이츠의 부회장을 역임했고, 지난해 4월4일 댈러스 연방은행 총재로 취임했다.
피셔 총재는 세계 각지의 문화적 배경을 두루 경험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끄는 인물이다. 그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출생했으나 자란 곳은 멕시코다. 그의 부모는 각각 호주와 노르웨이 출신이다.
때문에 그는 스페인어도 영어만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피셔와 함께 일했던 맥라티 전 백악관 비서실장은 피셔가 댈러스 연방은행 총재로 취임했을 당시 "피셔는 국제 경제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라며 "멕시코와의 교류가 많은 댈러스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댈러스 연방은행 총재직은 피셔에게 꼭 맞는 직업"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월가도 피셔를 주목하고 있다. 메릴린치의 데이빗 로젠버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스터 8이닝`이 이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플레이션 파이터가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8이닝`과 `이요르`를 넘나드는 피셔가 다음에는 어떤 발언을 내놓을 지, 그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 지 월가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더 오른다잖아요”…계약갱신권 포기한 전세난민 사연[부동산 취재로그]](https://image.edaily.co.kr/images/vision/files/NP/S/2026/07/PS26070400009t.jpg)


![[그해 오늘] ‘36주 낙태' 영상에 발칵…법원, 의사·산모에 ‘살인 유죄'](https://image.edaily.co.kr/images/vision/files/NP/S/2026/07/PS26070400001t.jpg)
![24만원대에 고급미…박규영의 '품절' 투피스 뭐길래[누구템]](https://image.edaily.co.kr/images/vision/files/NP/S/2026/07/PS26070400020t.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