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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최근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눈물을 흘렸다. 감동 실화 영화가 아닌, 땀내 가득한 스포츠 애니메이션을 보면서다. 올 초 국내에 농구 열풍을 몰고 온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얘기다. 30년도 더 된 ‘슬램덩크’라는 지식재산(IP)이 눈물에 인색한 40대 남성의 눈물샘을 어떻게 자극할 수 있었을까.
중·고등학생 때 빠져서 봤던 ‘슬램덩크’란 IP에 깃든 추억 때문일 테다. 실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국내 3040세대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성공에 과거에 발행됐던 만화 단행본도 최근 약 60만 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추억 속에 잊혔던 ‘슬램덩크’라는 IP가 다시금 재조명 받은 셈이다. 당시를 기억하는 많은 3040 세대의 추억과 함께 말이다.
이처럼 IP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아주 먼 과거에 나왔던 IP라도 단순히 수명을 산술화할 수 없다. 탄탄한 IP라면 ‘슬램덩크’처럼 30년이 지나도 사회를 움직일 수 있다. 비단 당시를 기억하던 3040 세대가 아니더라도 이를 접한 현 세대에게도 IP의 힘은 전달된다. 현재 많은 콘텐츠 업체들이 하나의 명품 IP를 만들기 위해 무한 경쟁에 나서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시장 규모가 20조 원을 돌파한 게임 업계에서도 IP의 힘은 절대적이다. 넥슨의 중심 IP 중 하나인 ‘카트라이더’가 대표적이다. 넥슨은 올 초 신작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정식 론칭을 준비하면서 기존 ‘카트라이더’의 서비스 종료를 알린 바 있다. 당시 서비스 종료와 관련해 회사 측이 마련한 온라인 행사가 인상적이었다. 온라인 채팅창에는 “ㅠㅠ”가 빗발쳤고, “내 추억까지 종료되는 것 같아요”라는 게이머들의 채팅이 줄을 이었다. 약 20년을 이어온 ‘카트라이더’ IP의 힘이다.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단 하나의 명품 IP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명암이 엇갈린다. 지난해 국내 게임사 실적만 봐도 그렇다. ‘던전앤파이터’, ‘리니지’ 등의 대표 IP를 보유한 넥슨과 엔씨소프트(036570)는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알만한 IP가 부재한 넷마블(251270)의 경우 1000억원 대 적자를 냈다. 경영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IP의 힘으로 최대한 선방하는 기업들의 사례도 많이 접할 수 있다.
이처럼 IP는 단순한 하나의 신규 콘텐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살아 있는 생물처럼 시대와 상황에 맞게 바뀌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게 해준다. 웹소설 ‘재벌집 막내 아들’이 지난해 드라마로 방영, 큰 흥행을 몰고 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에서 인기를 얻은 IP는 최근엔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로도 확산할 수 있다.
이는 국내에 국한된 K-게임사들에게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던져준다. 글로벌로 가려면 결국 콘텐츠 싸움, 즉 IP 경쟁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거다. 최근 국내 게임사들이 열을 올리고 있는 콘솔 시장 도전을 넘어 글로벌 게이머들의 마음을 움직일 탄탄한 IP 개발이 절실하다. 단순히 반짝 눈길을 끄는 IP가 아닌, 깊이 있는 이야기 전개가 깃들여진 명품 IP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