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사례 1. 서울 도봉구에 전세를 사는 A씨는 최근 집주인과 계약을 연장했습니다. 그러면서 5000만원을 돌려받았습니다. 2년 전 계약할 때보다 전세 시세가 내려가서 그만큼을 돌려받고 계약을 연장한 겁니다. 집주인은 이 돈을 마련하려고 예금을 깼다고 하소연합니다.
사례 2. 서울 양천구 아파트를 전세 내준 집주인 B씨는 계약 만료를 넉넉하게 남겨두고 세입자에게 연장 여부를 물었습니다. 전세금을 낮추지 않으면 방을 빼겠다고 하기에, 그 가격보다는 높되 이전 가격보다 낮춰서 전세 세입자를 찾았습니다. 다행히 자녀 교육 때문에 전입하려는 세입자를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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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하락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전세금은 통상 집값이 오를 때 함께 오릅니다. 전세금만 홀로 오르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집값이 내리면 전세금도 함께 내리는 편이죠. 지난해까지 오르던 집값이 점차 내려가는 추세입니다. 부동산원이 집계한 결과 1월 4주차(23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주보다 0.31% 하락했습니다. 매수 심리가 위축하니 불가피한 결과입니다. KB 부동산이 집계한 지난주 서울 매수우위지수는 20.9포인트입니다. 매수우위지수는 0~200 범위 이내이며 지수가 100을 초과할수록 매수자가 많다는 의미이고 미만이면 매도자가 많은 걸 의미합니다. 수급은 가격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전세금도 함께 하강 곡선을 타는 게 불가피합니다. 무엇보다 전세가율 하락이 가파릅니다. KB 시세에 따르면 이달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 대비 전세 시세는 52%를 기록했습니다. 전달보다 0.9% 포인트 떨어졌고, 2016년 6월(75%) 정점 당시보다 23%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집값이 하락해 전세가율도 하락하니, 전세 만료가 다가온 임대인은 이 하락 압박을 버텨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전세가와 전세가율 하락은 매매 시장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예컨대 10억원 아파트를 전세 끼고 사려면 전세가율이 정점이던 2016년 당시는 2억5000만원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5억원 가까이 필요합니다. 더 큰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데 금리까지 높으니 부담이 전보다 커졌죠. 이런 부담을 기꺼이 부담하기가 전보다 어려운 상황입니다.
물론 전세가 집을 사는 레버리지로 쓰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죠. 집값에 거품이 끼였다면 걷어내는 것도 맞을 겁니다. 그러나 이로써 매매가 위축하면 실수요자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모두가 다주택자도 아니고 투기꾼은 아닐 테니 말이죠. 시장이 역전세를 우려하는 배경은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