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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는 콘텐츠 업계의 '애플'이 될 수 있을까

김성훈 기자I 2021.10.03 11:00:00

‘시장 개척한 선두주자’…애플과 유사점
국내 통 큰 제작 지원 ''소기의 결실'' 시작
글로벌 OTT 경쟁 유의미한 주도권 확보
게임·웹툰 등 사업 영역 다변화도 주목

스티브 잡스(사진=애플)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새해를 막 일주일 넘긴 2007년 1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 청바지에 검은색 터틀넥을 입은 한 남성이 대중 앞에 섰다. 청중들의 관심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그가 꺼낸 한마디는 국내외 IT(정보통신) 업계는 물론 우리의 생활을 바꾸는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저희는 이 제품을 아이폰이라 부를 겁니다” 고(故)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세계 시장에 첫선을 보인 순간이다.

최근 ‘디피(D.P.)’와 ‘오징어 게임’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넷플릭스(Netflix)를 보고 있노라면 애플의 행보가 떠오른다. 언뜻 ‘미국계 기업’이라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있나 싶지만 ‘시장을 개척한 선두주자’ ‘업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유사한 부분이 적지 않다.

(사진=AFP)
넷플릭스는 지난 1997년 첫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디오 대여 사업을 하다가 현재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조정했고 입소문을 타며 사세를 확장시켜 나갔다.

당시만 해도 디즈니나 HBO 등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들은 넷플릭스의 행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리가 일군 콘텐츠 경쟁력을 따라올 수 있겠느냐’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라는 플랫폼은 차치하더라도 ‘킬링 콘텐츠가 있느냐’하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꼈을 수 있다.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 ‘기묘한 이야기’ ‘종이의 집’ 등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에 나선 오리지널 시리즈가 입소문을 타면서 속속 흥행작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넷플릭스가 벌어들인 돈의 상당수를 콘텐츠에 재투자하는 일종의 ‘배수진’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넷플릭스의 등장 이후 미국에서는 시청하던 케이블 선을 끊고 넷플릭스를 본다는 의미인 ‘코드커팅(Cord-Cutting)’ 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쓰이기 시작했다. 현재도 미국 젊은 층 사이에서는 미식축구(NFL) 등과 같은 인기 스포츠를 제외하고는 본방 사수 대신 넷플릭스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하나의 흐름으로 굳었다고 한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로 극장 방문에 제한이 온 것은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퀀텀 점프’ 구간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공격적인 투자는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시장을 선점하는 밑거름이 됐다. 프로젝트당 200억원 가까운 통 큰 지원에다 창작의 자유까지 보장하면서 국내 제작사들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국내 제작 콘텐츠의 경쟁력과 흥행을 확인한 넷플릭스는 향후 국내 콘텐츠 투자 규모를 더 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제작에 투자한 금액은 5500억원 수준이다. 거액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넷플릭스 연간 콘텐츠 예산의 2.8%에 불과한 수준이다.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흥행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예산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넷플릭스는 자신들을 얕보던 거대 회사들과의 만만찮은 경쟁을 앞두고 있다. 디즈니와 워너미디어, NBC유니버셜 등 굵직한 미디어 기업들이 OTT 시장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당장 다음달 12일 디즈니플러스가 한국 서비스를 출시한다. 디즈니 플러스 출시 이후엔 한국 오리지널 투자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 영향력이 예전만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디피 촬영현장(사진=로이터)
결론을 함부로 예단할 수 없지만 앞선 애플의 사례로 어느 정도 짐작은 해볼 수 있다. 2000년대 중후반 아이폰이 전 세계를 강타하자 글로벌 IT 업체들의 패권 다툼이 벌어졌다. 삼성전자(005930)는 물론 구글과 모토로라, 화웨이, 샤오미, HTC 등이 번번이 새로운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현재로서는 삼성을 제외하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비단 애플 사례 뿐만 아니라 여타 업종을 찾아봐도 ‘시장을 주도적으로 선점하고 있는 사업자’가 후발 주자에 완벽하게 뒤집힌 경우는 흔치 않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의 테슬라나 국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에서의 쿠팡 등을 봐도 그렇다. 더욱이 넷플릭스가 국내에 투자한 금액이 글로벌 흥행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점을 미뤄봤을 때 넷플릭스의 아성이 한 순간에 무너지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오태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넷플릭스는 장기적으로 모바일 게임 시장 진출, 웹툰 출시, 굿즈 판매 등 다양한 사업에 진출하며 지적재산권(IP)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며 “기존에 우려로 작용했던 구독자 순증 폭도 하반기에는 인기 콘텐츠가 연속으로 공개되며 다시 확대될 것이기 때문에 구독자 순증이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OTT라는 새 산업의 패러다임을 열어젖힌 넷플릭스의 아성은 유지될 수 있을까. 본격적인 경쟁이 초읽기에 들어선 상황에서 애플의 뒤를 밟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이 누릴 ‘재미난 콘텐츠 만끽하기’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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