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꼽히는 뉴욕 월 스트리트(Wall Street)에서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세계 유수의 인재들이 철저하게 숫자(투자수익률)로 자신의 실력을 평가받는다. 실력 외적으로 보이지 않는 장벽도 만만치 않다. ‘조용하고 의견 개진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고정관념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장벽을 일컬어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이라는 말이 두터운 곳이기도 하다. 그런 미국 월가에서 한국계 미국인 이규성(55)씨가 세계 3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칼라일’(Carlyle) 그룹의 최고경영자(Co-CEO)로 내정됐다. 올해 1분기 기준 260조의 자금을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에서 한국계 단독 CEO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사회에 깃든 대나무 천장을 뚫고 가장 높은 자리에 우뚝 선 것이다.
칼라일그룹은 21일(현지시각) 2018년부터 이 대표와 공동 CEO를 맡아 온 글렌 영킨(Glenn Youngkin·53) 대표가 물러나면서 이 대표 단독 체제로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칼라일그룹은 KKR·블랙스톤과 함께 세계 3대 사모펀드로 꼽힌다. 세계 각국에 32개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직원도 약 1700명에 달한다. 자산운용규모(AUM)가 올해 1분기 기준 2170억달러(259조원)로 서울시 한 해 예산(35조 2808억원)의 7.3배에 달하는 메머드급 규모다.
1965년 미국 뉴욕주 알바니(Albany)에서 태어난 이 대표는 연세대 경영대학장을 지낸 고(故) 이학종 교수의 아들이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지내다 도미(渡美)한 그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모교인 초트로즈마리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하버드대에서 경제학과 응용수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이후 골드만삭스와 맥킨지&컴퍼니를 거쳐 투자은행인 ‘워버그 핀커스’에 들어가 사모펀드 업계에서 각종 투자와 기업 인수 활동을 총괄하며 21년간 일했다.
그러던 2013년 칼라일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인 윌리엄 콘웨이의 추천으로 칼라일그룹 투자 담당 임원으로 영입됐다. 칼라일 입성 4년 차에 접어든 2017년 공동 CEO 자리까지 오르면서 일찌감치 칼라일 그룹의 차기 수장으로 꼽혀왔다.
이 대표는 2014년 3월 ADT캡스 인수전을 진두 지휘하면서 국내 자본시장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당시 ADT캡스 인수가격으로 약 20억달러(2조1000억원)를 베팅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너무 비싼 가격에 인수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좋은 투자였기 때문에 투자자에게 성과를 줄 것”이라던 그의 말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결실을 맺었다. 2018년 5월 SKT-맥쿼리 컨소시엄에 ADT캡스를 2조 9700억원에 매각하면서 4년 만에 1조원에 가까운 매각 차익을 실현했다.
이 대표가 칼라일의 수장으로 올라서면서 국내 M&A 시장에도 활기가 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대표는 공동 CE0 재직 시절 “한국은 매우 중요하고 매력적인 시장이다”며 “카브아웃(Carve-out:대기업이 매각하는 자회사나 사업을 사들여 성장시키는 것) 거래에 관심이 많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