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영화 속 주인공' 당당해질 때

고규대 기자I 2016.12.30 06:00:00

류한수 (상명대 교수, 유럽현대사)

[류한수 상명대 교수] 영화가 어떻게 변주되는지 짚어보는 것도 재밋거리이다. 서부영화가 그렇다. 한때 세계는 정의의 총잡이가 무법자와 비장한 대결을 벌이는 미국 영화에 열광했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도 최측근과 함께 서부영화 보기를 즐겼다.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1954년에 서부영화의 구도를 16세기 말엽 일본에 투사해서 ‘7인의 사무라이’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거꾸로 할리우드의 흥미를 끌었고, 그 결과 나온 작품이 배경과 장소를 19세기 미국으로 변주해서 존 스터지스 감독이 율 브리너 등 당대의 최고 흥행배우 7명을 동원해 만든 ‘황야의 7인’이다. 동서양 대중문화가 경계를 넘나들며 영향을 주고받은 행복한 사례일 것이다.

1960년에 나온 ‘황야의 7인’이 올해 ‘매그니피센트 7’이라는 리메이크로 환생했다. 두 영화 사이의 간격이 두 세대에 가까우니,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변주가 없을 수 없다. ‘황야의 7인’은 백인 일색이지만, 매그니피센트한 7인에는 흑인, 멕시코인, 인디언, ‘동방에서 온 신비한 남자’가 끼어 있어서 백인이 오히려 소수파다. 그 ‘동방에서 온 신비한 남자’가 이병헌인 까닭에, ‘매그니피센트 7’는 작품의 완성도에 상관없이 우리의 이목을 끄는 영화가 되었다.

할리우드 영화에 한국 영화인이 나온다고 호들갑을 떠는 게 어느새 촌스러워 보일 만큼 한국 영화인의 세계 진출이 많이 이루어졌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은 아예 외국에서 영화를 만들고 한국이나 한국인 배우가 비중 있게 나오는 외국 영화가 속속 선을 보인 터이다. 워쇼스키 감독의 2008년 작품 ‘스피드 레이서’에 비(정지훈)이 등장했고, 2012년에 ‘어벤져스 2’에서는 주인공들이 아예 서울에서 악당과 대결을 벌이는 판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한국 배우의 캐릭터에 서양의 편견이 배어 있다며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뤽 베송 감독이 스칼렛 조핸슨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만든 2014년 작품 ‘루시’에 최민식이 미스터 장이라는 악랄한 한국인 마약범죄조직 두목으로 나온다. ‘매그니피센트 7’만 해도 이병헌은 총알이 빗발치는 서부에서 어색하게도 칼을 쥐고 싸우는 캐릭터였다. 동양인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 개봉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서 중국 배우 견자단은 비슷한 맥락에서 중무장 돌격대원 십수 명을 막대기 하나로 단숨에 때려눕히는 무예의 달인이면서도 굳이 장님으로 나온다. 동양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타자는 대중 문화매체에서 나쁜 악한, 아니면 알 수 없는 신비한 존재로 묘사된다.

한국인을 부정적으로 그린 영화는 적지 않다. 조엘 슈마커 감독이 마이클 더글러스를 주인공으로 세워 1993년에 만든 영화 <폴링다운>에서 로스앤젤레스의 한국인은 돈만 밝히는 한심한 존재로 나온다. 2007년에 나온 <철없는 그녀의 아찔한 연애 코치>라는 영화에도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한국인 마사지숍 장면이 있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묘사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문화 매체에서 우리와 다른 존재, 우리 건너 편에 있는 존재가 과연 제대로, 있는 그대로 그려지는지 돌이켜보면, 갑자기 멋쩍어진다.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서구인은 늘 거들먹거리고 동남아 사람은 늘 꾀죄죄하고 일본인은 늘 간사하다. 한국전쟁 영화에서 인민군은 철모가 아닌 헝겊모자를 쓰고 전투에 나서고, 중국군은 전략전술 없이 인해전술만 구사하는 개미떼로만 나온다. 임진왜란 영화의 왜군 장수들은 하나같이 죄다 인격이 망가진 조울증 환자이다.

김한민 감독이 2011년에 내놓은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만주족 장수 쥬신타(류승룡 분)는 악역이지만 나름대로 멋진 캐릭터여서 그가 주인공 남이(박해일 분)와 벌이는 대결이 더 재미있고 박진감이 넘쳤다. 하지만 김한민 감독의 2014년 작품 ‘명량’은 캐릭터 면에서 꽤 아쉬웠다. 왜군 장수 구루시마 미치후사(류승룡 분)는 새된 소리만 내는 싸이코에 지나지 않아 이순신과 벌이는 대결이 제대로 된 긴장감을 주지 못했다.

대중 문화매체의 완성도는 타자가 뒤틀리고 정형화된 이미지로 나올수록 떨어진다.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를 시장으로 삼는다면 흥행에도 좋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인식이 뒤틀린다는 데 있다. 나를 제대로 안 보는 남을 탓하기에 앞서 내가 남을 제대로 보는지 짚어보아야 한다.

◇류한수 상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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