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여성정책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20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들이 내세운 여성정책 공약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반응은 ‘덮어놓고 보면 어느 당의 정책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참신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에서 특별히 개선된게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 ‘재탕, 삼탕…’..신선함 없는 여성정책
대표적으로 새누리당이 공약으로 제시한 시간선택형근무제(시간제일자리)의 경우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다. 하지만 질좋은 일자리를 양산해내지 못할 뿐더러 경력이나 승진을 비롯해 연금 등 복지혜택도 제한적이다. 특히 전일제일자리로 전환하는 게 쉽지 않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체 시간제일자리 중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 국민연금·고용보험 가입이 보장되며 비정규직이 아닌 ‘질좋은’시간제일자리는 2014년 기준으로 6%에 불과하다.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현실에선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당들은 휴직기간을 늘리고, 휴직급여를 늘리는 데 급급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육아휴직 급여를 월 통상임금의 100% (상한 150만원, 하한 70만원)로 인상하고,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 확대(30일 이내 20일 유급휴가)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국민의당은 출산휴가 기간을 90일에서 120일로 확대하고 육아휴직 급여를 현행 40%에서 50%로 상향 조정하는 한편, 배우자 출산휴가를 2주로 확대하는 방안을 내세웠다. 정의당도 육아휴직 파파쿼터제(아빠의무할당제) 3개월 추가 도입, 출산전후 휴가 확대 등을 약속했다.
여성의 임금차별이나 고용불평등도 마찬가지다. 이미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남녀의 평등한 기회보장 및 대우’ ‘직장 내 성희롱의 금지 및 예방’ 등이 모두 명시되어 있다. 다만 지켜지지 않을 뿐이다.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여성정책과 관련해 정책전문가를 양성하지 않았다는게 이번 총선 공약에 그대로 들어난다”면서 “심지어 몇몇 공약은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들”이라고 꼬집었다
◇“재원마련·구체적 전략도 없어”
시민단체들은 그럴싸한 정책을 새롭게 내세우는 것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책부터 제대로 점검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한 관계자는 “예를 들어 시간제일자리 정책의 경우 박근혜 정부에서도 강력하게 밀고 있지만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면서 “현 정책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정책적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구체적인 재원마련 방안도 없다. 선거를 위한 선심성·일회성 공약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새누리당은 아이돌봄서비스·공립유치원 확대 방안을 제시했고, 더민주는 보육 및 유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 이행촉구, 아이돌봄서비스 지원대상 확대 등을 공약으로 제안했다. 국민의당도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및 누리과정 국가책임, 정의당도 ‘무한돌봄·공공돌봄’ 자녀양육 사회책임제, 누리과정 100% 국고지원 등 무상보육 확대를 공약했다.
이광재 메니페스토 실천본부 사무총장은 “결국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려면 자금이 필요하다”면서 “실효성이나 진심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재원마련을 할 것인지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몇몇 정책들은 목표만 있을 뿐 구체적인 시행방안이 없다. 실현가능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더민주는 임신·출산 불이익, 성차별에 대한 근로감독 및 차별성 강화 등을 언급했지만 달성 방안은 없다. 국민의당은 ‘감정노동자의 기를 살리겠다’고 했지만 감정노동자로 일컬어지는 세부 업종도 적시하지 않았다. 정의당은 핀란드의 ‘마더박스’나 영국의 ‘클레어법’ 등 여러 해외제도를 언급했지만 우리나라의 현실 상황에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조 입법조사관은 “몇몇 정책은 탁상정책이다. 현실에서 정말로 여성이 원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다가가서 물어봤는지 궁금하다”면서 “지금이라도 실현가능한 공약을 추려서 구체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