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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가계빚 잡으려다 주택시장 잡을라

조철현 기자I 2015.12.03 05:00:00
[이데일리 조철현 사회부동산부장] ‘거래 활성화 전도사’. 부동산시장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평가는 꽤나 후하다. 얼어붙은 주택시장을 살릴 구원투수로 나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뒀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7월 경제 사령탑 취임 첫날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박근혜정부 1기 경제팀의 정책 방향을 확 바꿔버렸다. 논란이 됐던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한여름 겨울옷’이라며 한방에 풀어버렸다. 은행에서 돈을 쉽게 빌릴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한국은행에도 정책 공조를 주문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한국은행이 적절한 결정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압박(?)한 것이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로 화답했다.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인 1.5%까지 내려갔다.

주택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뜸했던 매매 거래가 이뤄지고,약세이던 집값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주택 매매 거래량은 올해 상반기에만 61만건을 넘어섰다. 지난해 상반기 대비 29.1% 증가한 것이다. 집값도 같은 기간 1.8% 올라 지난해 연간 상승률(1.7%)을 이미 웃돌았다. 부동산은 건설 관련 업종뿐 아니라 자재·가구·이사·인테리어·냉난방 설비업 등 후방 연쇄효과가 큰 업종이다.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8%로 높게 잡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시장 분위기가 심상찮다. 저금리 장기화와 전세난이 겹치면서 상승세를 타던 주택시장이 숨고르기에 들어간 양상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주택 매매 거래량은 10만6274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8% 줄었다. 집값도 지난달 0.31% 오르는데 그쳐 전달(0.33%)보다 상승폭이 줄었다. 그동안 집값이 많이 오른데다 공급 과잉 우려로 일단 지켜보자는 관망세가 확산한 때문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이제 “함부로 빚내지 마라”며 대출 규제 강화 카드를 꺼내들 태세다. 내년부터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는 분할상환 대출을 대폭 확대하고, 소득 심사도 까다롭게 해 빚 갚을 능력이 되는 만큼만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빚 내서 집 사라’고 유도하던 1년 전과는 딴판이다. 가계 빚이 어느새 1200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금리가 앞으로 오를지 모르니 미리 대비하자는 정부 차원의 경고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대출 규제 강화는 가계부채 부실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어렵게 살아난 부동산 경기를 급속히 냉각시킬 수도 있다. 주택자금 마련 제한에 따른 구매 심리 위축은 결국 거래량 감소를 낳고, 집값을 약세로 이끌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대출 규제가 오히려 전세난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주택 마련 수요가 줄어드는 대신 전세나 월세 등 임차시장에 머물려는 수요가 늘면서 가뜩이나 불안한 전·월세시장이 더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했다. 전셋값이 오른다고 무작정 전세자금 지원에 치중하기도 어렵다면, 전세에서 매매로 전환하는 수요에 대한 길을 터주는 게 바람직하다. 대출 억제→매매 수요 감소→전세 수요 증가→전셋값 상승→무주택자 주거비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타이밍과 일관성이 중요하다. 최 부총리는 취임 직후 “정부 정책은 일관성이 생명”이라고 말했다. 지금 정부에게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정책 방향과 지속성을 통해 부동산시장 참여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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