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얼마 전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봤다.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영화답게 오락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배트맨이 없는 고담시를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배트맨이 자리를 비운 사이 고담시는 질서를 잃어가고 폐허로 변했다. 배트맨의 귀환에 고담시 시민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악당이 나타날 때마다 자신들을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는 영웅이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배트맨에 대한 시민들의 의존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배트맨이 활약하는 한 고담시는 영원히 불안하고, 암울한 도시일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 증시로의 외국인 유입세를 보고 있으면 고담시와 배트맨의 아이러니한 관계가 연상된다. 국내 증시가 글로벌 자금 흐름에 지나치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현 위기시점에서 유동성 유입은 긴 가뭄의 단비같다. 유럽재정위기가 해소되고 글로벌 경기 회복이 진행되기 전까지는 당분간 외국인의 움직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유로존 우려가 심화되기 시작한 4월 이후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빠르게 확산됐다. 외국인은 위험자산인 이머징 마켓, 특히 한국 증시에 투자했던 자금을 거둬 들였고, 외국인이 외면한 한국증시는 폭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외국인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전일(9일)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 1조5677억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최근 10거래일동안 총 4조3264억원어치의 주식을 매입했다. 외국인의 강한 매수 공세에 힘입어 전일 코스피는 2%가까이 급등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러한 글로벌 자금 유입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외국인의 귀환은 경기회복보다는 유동성 여건의 개선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강하다.
김현준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이머징 국가를 중심으로 매크로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며 “또한 작년 하반기대비 기저효과와 유럽중앙은행을 중심으로 풀린 유동성으로 인해 위험자산 선호가 재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아람 NH농협증권 연구원은 “5월 이후 진행된 외국인 자금 유출은 국내 주식시장의 펀더메탈과 상관없이 나타났다”며 “Fed의 양적 완화 기대와 ECB, EFSF의 재정위기국 국채 매입기대로 그동안 안전자산에 쏠려 있던 글로벌 유동성이 위험자산으로 유입되면서 주식시장에 강한 상승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외 변수가 여전히 불안한 상황에서 외국인의 귀환은 국내 투자자들의 투자심리 회복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단기 급등에 따른 조정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미리 조정을 예측하고 움츠리기 보다는 외국인의 매매 동향을 보면서 추세에 순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