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를 두고 17년 전 오양수산과 사조그룹의 통합을 떠올리는 목소리가 나온다. 2007년 김성수 오양 창업회장의 별세 직전 어머니인 최옥전 씨 주도로 유족들은 대주주 지분을 사조그룹에 넘겼고, 장남인 김명환 당시 오양 부회장은 이에 반발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비대위’까지 차린 법정 공방 끝에 결국 오양은 사조그룹 품에 안겨 사조오양(006090)으로 출범했다.
창업주의 타계와 이후 유가족인 대주주의 지분 매각, 가족 간의 경영권 다툼까지. 지분 매각에 나선 어머니에 아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구조마저 두 사례는 판박이처럼 닮아있다. 한미약품그룹의 두 아들이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을 제기함에 따라 OCI그룹과의 통합 작업도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
‘오양맛살’로 소비자에게도 친숙한 오양수산은 출판사 법문사의 창업주 김성수 회장이 1969년 설립한 수산업체다. 1972년 북태평양에서 원양어업을 개시했고 1986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설립 이후 40년 가까이 국내 게맛살 시장에서 선두권을 달려왔으나 창업주의 별세 이후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되며 경쟁사인 사조그룹에 편입되고 말았다.
김성수 창업회장은 1954년 부인 최옥전씨와 결혼해 슬하에 2남4녀를 뒀다. 장남인 명환씨가 부회장직을, 셋째 사위인 문영식씨가 사장직을 맡았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가족 경영인 듯 보였다. 하지만 2000년 김 회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김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갈등은 본격화됐다. 김 회장은 김 부회장이 문영식 당시 사장을 내보내고 대표이사에 오르자 2003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선임 무효를 주장하며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김 부회장이 어머니를 상대로 채권반환소송을 내는 등 물고 물리는 소송전이 지속됐다.
오양가의 갈등은 2007년 6월 2일 김 회장 별세와 맞물려 정점을 찍었다. 당시 김 부회장을 제외한 유족들은 본인과 위임받은 김 회장 명의의 오양수산 주식 35.41%를 사조산업에 매각했고, 김 부회장은 이에 반발해 법원에 주권 인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오양수산 임직원 100여 명이 김 회장 장례식장까지 나서 지분 매각 반대 등을 호소했고, 김 부회장 역시 이번 지분 매각은 ‘적대적 M&A’라며 법적 대응에 나섰으나 최종 패소했다. 이후 오양수산은 2009년 사조오양으로 사명을 변경하게 된다.
|
한미약품그룹 역시 2020년 임성기 회장의 별세 이후 모자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미약품그룹의 유력 후계자로 거론되던 장남 임종윤 사장이 임 회장 별세 후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사회에서도 제외되면서다. 임종윤 사장은 중국으로 건너가 개인 회사인 코리그룹과 코스닥 상장사 DxVx(디엑스앤브이엑스) 경영에 집중했다.
반면 송 회장과 누이 임주현 사장은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뜻을 모았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와 손을 잡는 한편 OCI홀딩스와의 통합을 주도한 것도 둘이었다. 계약이 마무리되면 OCI홀딩스가 통합 지주사가 되고, 한미사이언스는 제약바이오 자회사를 거느린 중간 지주사가 된다. 이 과정에서 두 형제의 모습이 배제되면서 한미약품그룹의 가족 간 갈등은 기정사실화됐다.
임종윤·종훈 사장은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수원지방법원에 공동으로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냈다. 이번 양사의 통합 계획이 오너일가 간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이뤄진 3자 배정 유상증자라는 점에서 법적 효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송 회장 측과 두 아들 간 우호지분 확보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