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해외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렸던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사모대출펀드(PDF)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PDF는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사모투자펀드(PEF)와는 달리 기업에 대출을 해주거나 회사채 등에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대출이라는 특성상 시장 변동성이 큰 시기에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금리 시대에 시중은행의 대출길마저 좁아지자 국내 자본시장 큰손들이 PDF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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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에 이데일리가 연기금과 공제회, 기타금융기관 소속 관계자들 2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체투자 중 올해 가장 유망할 것으로 예상하는 자산에 ‘PDF’라고 답한 이들이 응답자 22명 중 9명(41%)으로 가장 많았다. 이 외에도 △세컨더리(6명·27%) △바이아웃(3명·14%) △벤처펀드(2명·9%) 등 의견이 나왔다.
연초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유럽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 등으로 은행권 대출이 가로막히자 자금을 구하기 어려워진 기업들이 자본시장에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금융사들이 유동성 관리를 위해 대출을 축소하자 중소기업이나 비상장기업들을 중심으로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게 됐기 때문이다.
한 기관투자가는 PDF를 꼽은 이유에 대해 “은행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펀드의 사모 대출에 기회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는데 PE 부문은 아직 가격조정이 더 진행될 필요가 있고, 안정적인 대출형 상품이 인기가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안정한 시장 환경에서 많은 기관투자가가 지난해 부진한 성적표를 뒤로하고 올해 높은 수익률을 내기 위해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재조정)에 나서는 가운데, PDF를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다. 앞서 설문조사에서 올해 출자 사업 계획을 묻는 문항에도 역시 PDF가 7명(32%)으로 가장 많았으며, 세컨더리(4명·18%)·PEF 정기출자(4명·18%) 등 답변이 뒤를 이었다.
한 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금 경기 침체와 신용위기·부도·구조조정 등 실물부문의 가격조정이 본격화하는 양상이고, 기업실적도 악화하고 있다”며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지속하면서 불확실성이 큰 주식이나 지분성 대체투자보다 고금리를 활용하는 대출쪽으로 자산배분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안정성 높아 고금리 시대 효자 전략
지난해부터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 14일 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도 연내 두 차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내 자본시장 큰손들은 최소 연말까지는 금리 상승기에 선·중순위 대출 자산의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PDF는 지분 투자가 아닌 대출 형식이고, 중위험 중수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기관투자가의 투자전략과도 상응한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기관마다 다르겠지만 금리가 오르면 PDF는 이자 수익률이 높아져 매력적인 상품”이라며 “다만, 국내 보험사는 100% 환헤지를 원칙으로 삼고 있어 금리가 오른 만큼 환헤지 비용도 늘어나기 때문에 완전히 희소식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투자처에 대한 기관투자가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마찬가지로 사모대출시장에 진출하는 PEF 운용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조성된 PDF 운용자산(AUM)은 지난 2021년 말 기준 17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69% 증가했다. 지난 2021년 자본시장법이 개정된 이후 PEF 운용사의 대출형 펀드 조성 및 운용이 가능해지면서 PDF 조성이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IMM프라이빗에쿼티(PE)와 VIG파트너스, 글랜우드PE 등 국내 주요 PEF들은 자회사나 계열사를 통해 PDF를 운용하고 있다.
한 PEF 관계자는 “금리상승기에 ‘안정적인 먹거리’로 사모대출이 주목받고 있고, 부실채권이나 메자닌 투자 등에 활용할 수 있어 국내에서 PDF 시장에 대한 관심이 많다”며 “PDF는 대체로 변동금리를 적용하기 때문에 지금 같은 금리 상승기에 리스크 헤지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