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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관료 조직보다 정치권이 더 큰 문제라는 목소리도 높다. 공무원들이야 정부의 방향에 대해 ‘시늉’이라도 하지만 정치권은 여야 정쟁에 매몰돼 민생개혁입법을 내팽개쳐 놓고 있다시피하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게 주52시간제 시행에 따른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이다. 정부는 지난 3월 말로 주 52시간제 위반에 대한 처벌 유예 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국회에 보완 장치인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 입법을 올 초부터 요청해 왔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나도록 여야는 정치적 이슈를 이유로 이를 처리하지 않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탄력근로제 기간이 확정돼야 경영계획을 세울 수 있고 정부는 법에 맞춰 산업현장을 지도할 수 있는데 정치권 때문에 주 52시간제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제출한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강원도 산불 피해 지원과 포항 지진 피해 지원, 미세먼지 대책, 경기 하락에 대비한 민생 어려움 해결 등을 이유로 6조 7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여야는 아직 한차례도 심사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이 선거법과 사법개혁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린 것에 항의해 5월 내내 장외투쟁을 벌이면서 국회가 멈춰있기 때문이다. 국정을 책임져야 할 여당 역시 입만 열면 추경 처리를 강조하면서도 한국당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의 핵심법안으로 불리는 빅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역시 7개월째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들 법안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으로, 특히 IT벤처업계에서의 입법 요구가 많다. 하지만 해당 법안들은 국회의 소관 상임위원회 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올 하반기부터 시행되는 고교무상교육 관련 법안과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법을 개정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 등도 시급히 처리돼야 할 법안으로 꼽힌다.
문제는 내년 4월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돌입했다는 점이다. 여야 모두 입법활동보다는 총선 승리를 위한 지역구 관리 등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야당 입장에서는 정부여당의 성과를 막기 위해 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부 관료보다는 국회가 정쟁만 벌이고 있는 것이 더 문제”라며 “앞으로도 일하지 않고 정쟁만 거듭하는 국회가 된다면 다음 총선에서 ‘국회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