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는 지난해 4분기 크래프트 하인즈가 대규모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30조원에 가까운 순손실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적자전환했다고 밝혔습니다. 버크셔는 우리에게도 케첩으로 유명한 하인즈를 지난 2013년 인수해 현재 1대 주주로 있습니다.
버핏은 자신의 실수를 깔끔히 인정했습니다. 하인즈가 여전히 훌륭한 사업을 하고 있지만 너무 비싸게 샀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약간의 투덜거림(?)도 덧붙였습니다. 장기적인 전망이 뚜렷한 회사를 사고 싶어도 현재 시장에 유동성이 과도해 주가가 너무 오른 탓에 적당한 가격에 매수할 수 있는 회사가 없다는 겁니다.
실현되지 않은 이익이나 손실도 순익 계산에 반영하도록 바뀐 미국의 회계기준에 대해서도 “실적이 크게 출렁거리기 쉽기 때문에 합리적인 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실제 지난 4분기 버크셔가 보유한 애플의 주가가 30% 떨어지면서 버크셔의 평가손익도 며칠 만에 40억달러(4조 5000억원) 이상 바뀌었다고 하네요.
이렇듯 규정이 바뀌고 시장 환경도 바뀌면서 고전하고 있는 건 비단 버핏 뿐만은 아닙니다. 피델리티에서 28년간 영국 중심의 펀드를 운용하며 눈부신 성과를 거뒀던 전설적인 펀드매니저 앤서니 볼턴도 중국 펀드 투자에서는 그만큼의 재미를 못봤습니다. ‘헤지펀드 거물’ 크리스핀 오데이 역시 위안화 환율 급등을 내다보고 공매도에 나섰다가 지난 2017년 항복했죠. 불과 일 년 전인 2016년엔 브렉시트에 베팅해 하루 만에 15%의 수익률을 거뒀음에도 말입니다.
펀드매니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며 주가지수를 수동적으로 좇는 인덱스펀드에 돈이 몰리는 것도 이러한 환경과 무관치 않을 겁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중 무역분쟁의 향방, 선진국의 금리 움직임 등으로 증시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지난해 상당수 펀드매니저들의 수익률은 좋지 않았죠. 투자자들도 펀드매니저에 가만히 돈을 맡기기 보단 인덱스펀드를 통해 직접 투자하겠다는 욕구가 커졌습니다. 실제 전 세계적으로 패시브펀드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액티브펀드보다는 패시브펀드로의 자금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죠.
변동성이 높은 시장에서 전문가들은 다시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자사주를 매입하고 배당을 하기보다는 투자를 통해 주주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수 년 간 주장해왔던 버핏은 지난해 하반기 6년 만에 자사주를 매입하고, 올해 주주서한에선 향후 몇 년 간은 대규모로 자사주를 사들이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여전히 대형 회사를 인수하고 싶지만 여건이 만만치 않다면서요.
장효선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인 자본시장의 방향성을 믿는다면 버크셔에 대한 투자는 현명한 선택”이라면서도 “정보가 균등해지고 가격 반영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며, 가치주보다는 성장주에 극단적인 자금 쏠림이 발생하는 최근의 주식시장에서 꾸준하게 시장을 아웃퍼폼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라고도 짚었습니다.
버핏이 잠시 시장에 무릎을 꿇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을지, 아니면 이대로 천재의 시대는 저물어 가는 것인지 시장은 주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