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올해는 현 회장의 분위기에서 남다른 의지가 읽힌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만큼 다음달 4일 정몽헌 전 회장의 15주기 추모 행사를 북에서 열고 대북사업 재개 의지를 다지겠다는 복안이다. 지난 5월에는 일찌감치 남북한 경제협력(경협) 대비를 위해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리고 대북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2년 6개월만의 방북…성사 가능성 커
10일 현대그룹은 민간 차원의 방북을 추진한다. 현대그룹 내 금강산관광사업을 전담해온 현대아산에 따르면 현정은 회장은 고 정몽헌 전 회장의 15주기를 금강산에서 치르기 위해 다음주중 통일부에 민간 차원의 방북 접촉 신청을 낼 계획이다.
현정은 회장은 지난 2003년 정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매해 8월4일이면 북한 금강산에서 추모식을 개최해왔다. 2008년 관광객 고(故) 박왕자 씨 피격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전면 금지된 이후에도 정 전 회장의 추모행사를 북측에서 열어왔으나, 2016년 남북관계 경색으로 방북 신청을 하지 않았고, 지난해엔 북한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번 방북이 성사되면 현 회장은 2년6개월여 만에 금강산을 찾게 되는 셈이다. 또 개성공단 중단 이후 민간 교류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는 만큼 대북 사업 재개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대북사업 재개로 그룹 재건 노려
현 회장에게 대북사업은 그룹 재건의 상징일 뿐 아니라 범(凡)현대가(家)의 본원으로서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업을 잇는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현대그룹은 1998년 6월 정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하면서 물꼬를 튼 이래 그해 11월 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공단 개발 등 20여 년간 남북 소통과 경협의 창구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08년엔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그룹의 숙원인 대북사업이 멈췄다. 2009년 현 회장이 직접 달려가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지만 회복하지 못했다. 대북사업 중단 후 10년간 현대그룹은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렸다. 그룹이 위기에 처하자 회사 안팎에서 대북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현 회장은 ‘아픈 손가락’인 대북사업을 놓지 않았다.
현 회장은 현재 반전의 카드가 절실한 상황이다. 사실상 현대엘리베이터가 그룹을 홀로 지탱하고 있다. 최근 몇 년에 걸친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알짜배기 계열사인 현대증권과 현대상선 등을 모두 잃었다. 한때 재계 1위까지도 올랐지만 이제 자산규모 2조 원 수준의 중견그룹으로 쪼그라들었다. 유일한 기둥인 현대엘리베이터마저 최근 글로법 기업들의 국내시장 진출로 점유율을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사업 재개는 악화일로를 걷던 경영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현대그룹은 2000년 북측과 합의해 철도·통신·전력·통천비행장·금강산 물자원·주요 명승지 종합 관광사업(백두산·묘향산·칠보산) 등 7대 SOC(사회기반시설) 사업권(30년간)을 획득했다.
현 회장은 남북경협 TF 위원장으로서 첫 회의를 주재하며 “남북 화해와 통일의 초석을 놓고자 했던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나가자”고 독려했다. 아울러 지난해 말 명예퇴직했던 ‘남북경협의 산증인’ 김한수 이사도 최근 복귀시킨 것은 물론 매주 화요일마다 TF 정기 회의에 참석해 관련 현안을 직접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갈길이 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협 재개가 본격화하기 위해선 유엔 결의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먼저 해소돼야 한다. 실제로 현 회장은 최근 임직원들에게 “일희일비하지 말고 남북 교류의 문이 열릴 때까지 담담하게 준비하자”고 주문한 바 있다. 유엔 대북 제재와 관련한 국제사회 논의, 우리 정부의 남북경협 진행 추이 등을 예의주시하면서 TF의 진용을 보강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 삼아 차분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는 게 현 회장의 당부”라며 “2008년 사업 중단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흔들림 없는 의지와 확신으로 준비해온 만큼 경협이 구체화될 경우 사업 재개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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