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준기 장영은 기자] 북한의 잇따른 무력도발로 촉발된 한반도 긴장국면을 해소하고자 열린 남북 고위급 접촉이 25일 새벽 0시55분께 마무리됐다. ‘무박 4일’, 장장 43시간여 동안의 험난한 마라톤협상 끝에 극적 타결을 본 것이다.
남북은 이날 새벽 2시 각각 ‘공동보도문’을 통해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했고, 남측은 군사분계선 일대의 모든 확성기 방송을 25일 낮 12시부로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리 측은 공동보도문 제3항에 언급된 확성기 중단 방침에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이라는 단서를 붙여 사실상 ‘재발방지’ 약속을 얻어내는 효과를 봤다. 남북 고위급 접촉 우리 측 수석대표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전 춘추관 브리핑에서 “그것(재발방지약속)이 ‘비정상적인 사태’와 다 연결돼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측은 또 지난 21일 오후 5시를 기해 하달된 ‘준 전시상태’ 명령을 해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가면서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위기국면으로 몰아간 남북관계는 급속히 화해모드로 급반전하게 됐다. 실제로 남북은 이른 시일 내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했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올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는 한편 앞으로도 정례화하기로 합의했다.
김 실장은 “북한이 지뢰 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와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이번 합의는 북한이 위기를 조성하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요구한 데 대해 정부가 이를 거부하고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협상한 것에 대한 결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전날(2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및 서부전선 포격 도발에 대한 북한의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이 없다면 확성기 방송 중단도 없다고 밝혔다. 협상 결과에 사과·재발방지 약속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회담 결렬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흐지부지 넘어갈 경우 또다시 불거질 것이 뻔한 ‘도발-협상-보상-도발’이란 북한의 악순환도 이번 기회에 반드시 끊어야 한다는 승부수가 제대로 통한 셈이다.
다만 김 실장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남북 정상회담 추진설과 관련, “아직 남북 정상회담을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고 일축했다. 민간교류 활성화 방안에 대해선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해당 기관, 또 담당하는 부서에서 구체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했다. 향후 당국회담에서 논의될 내용이 5·24 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등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아직 거기까지는 안 나갔다”고 즉답을 피했다.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은 지난 22일 오후 6시30분부터 24일 0시55분까지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진행됐다. 우리 측에서는 김관진 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서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각각 참석했다. 중간에 한차례 정회한 시간을 제외하고도 43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