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 'CEO 리스크' 극복한 힘은?

성선화 기자I 2013.01.20 12:20:27
[이데일리 성선화 기자] “1911년 12월 영하 23도의 날씨에서 로알 아문센은 남극점에 도달했습니다. 한 달 뒤 같은 날 출발한 로버트 스콧의 원정대도 한발 늦었지만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스콧 원정대는 귀경길에 전원이 얼어 죽었고, 아문센은 금의환향했습니다. 스콧과 아문센의 차이는 뭘까요.”

지난 19일 오후 서울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신한은행의 ‘2012년 종합업적 평가대회’가 열렸다. “올해 경영 환경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외부 환경이 어렵다고 목표를 낮춰 잡지는 않았습니다. 세계 최초로 남극을 정복은 아문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에 20마일씩만 이동했습니다. 날씨가 좋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면 스콧은 날이 좋을 땐 40마일을, 악천후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서진원 은행장은 “어렵다고 움츠러들지 않고 성과를 내는 것이 82년 창립 이후 이어져 온 신한의 정신”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2010년 현직 행장이 그룹 지주 사장을 고소한 전례가 없는 ‘신한 사태’ 이후 3년. 신한금융지주는 흔들림없이 꾸준하다. 지난 3분기 은행과 카드의 자산 성장이 활발하게 재개되며 이자이익이 전분기 대비 2.6% 증가했다. 2011년 금융지주사 중 최고인 2조 5000억 원의 실적을 냈고, 지주사 시가 총액은 국내 1등이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신한은행이 최악의 내부 사태인 ‘CEO(최고경영자) 리스크’를 극복한 비결은 뭘까.

◇사람보단 시스템…강한 조직 문화의 힘

금융권 전문가들은 ‘강한 조직 문화의 힘’에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은행 중 유일하게 독립된 ‘신한문화실’이 존재한다. 왕호민 실장은 “조직문화는 흉내 낼 수도 없고 끊임없이 변화한다”며 “1년에 한두 번씩 문화 진단을 통해 변화를 감지한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국내 최초로 재일교포의 순수 민간 은행으로 출발한 신한은행은 창립 당시부터 ‘기업 문화’를 닦는데 공을 들였다. 당시 ‘신한금융연구소’를 중심으로 신한 문화 만들기에 착수했고, 매해 교재를 바꿔가며 조직론 공부에 열중했다. 조직론의 고전인 ‘로마 흥망사’가 국내에 번역되기도 전에 입수해 공부했다. 이원철 FSB연구소 부부장은 “‘베네치아 흥망성쇠’ ‘초우량 기업의 조건’ 등 매년 새로운 콘텐츠를 학습했다”며 “이런 조직론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가 조직 문화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신호창 서강대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는 “조직문화는 조직 구성원들의 공유된 신념 및 가치”라며 “의도적인 학습에 의해 형성된다”고 말했다. 특히 강한 조직문화는 핵심적 가치를 강하고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것이라는 이라고 설명했다.

◇순수 민간은행의 ‘파이팅 정신’…실력중심 문화

신한의 핵심 가치는 ‘성과주의’다. 올해도 어김없이 열린 업적 평가대회는 성과를 중시하는 조직문화의 ‘습관’이 됐다. 지방 지점까지 포함해 모든 직원이 모여 각 영업점의 성과를 평가하고 수상을 하는 세레머니다. 84년부터 30년째 이어지는 전통이다. 허갑수 동아대 경영학과 교수는 “조직 성과는 조직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강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게 높은 성과의 선행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성과주의를 지향하기 시작한 KB국민은행도 8년 전부터 유사한 수상 행사를 시작했다. 그동안 본부장급 이상만 참석하다가 올해부터 수상 직원들도 참석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신한 문화를 지주 차원으로 전파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금융지주 산하 13개 그룹사 신입사원들이 참석해 ‘신한 정신’을 학습한다.

◇‘신한 정신’ 이어갈 내부승계 프로그램 착수

이처럼 뚜렷한 신한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던 배경은 안정된 지배구조 덕분이다. 강한 조직문화는 높은 성과에 이바지하지만 그 대신에 강한 문화를 유지하려면 특히 최고경영층의 일관성 있는 경영 행동이 요구된다. 신한은행은 91년 이후 줄곧 내부 출신 행장이 리더십을 이어왔다.

이에 ‘신한’의 고유문화를 이어가기 위한 경영 승계 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다. 올 1월부터 행장 또는 회장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한 내부 승계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외부 인사를 추천할 때 해당 요건이 까다롭게 정해놨다. 일정 기간 금융권 관리 경험이 없는 ‘교수’와 ‘공무원’은 외부 추천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또 내부 후보군인 부행장들과 사외 이사들과의 공적, 사적 적 교류 갖도록 정규 커리큘럼에 넣었다.

19일 서진원 신한은행장이 2012년 종합업적평가대회에 참여한 직원들을 행사장 입구에서 직접 맞이하며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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