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최고가격제에 따른 정유사 손실 보전에만 약 5조6500억원의 예산을 마련한 한국도 가격 억제 중심의 지원 방식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IMF는 지난 13일 발표한 ‘10월 세계경제전망(WEO)’에서 “광범위한 연료 보조금, 일반적 감세, 가격통제는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정 부담이 큰 데 비해 취약계층에 혜택을 집중하기 어렵고, 한번 도입하면 정치적으로 철회하기도 쉽지 않다는 이유다. 가격을 낮게 유지하면 소비자가 에너지를 아낄 유인도 약해진다고 지적했다. 지원이 불가피하다면 취약계층에 한시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되 지원 대상과 종료 시점, 재원을 처음부터 명시하라고도 주문했다.
IMF 분석에 따르면 가격통제 등 광범위한 지원은 선별적 현금지원보다 3~22배 많은 재정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생산자 보조금은 가장 비효율적인 수단으로 꼽힌다. 선진국의 에너지 충격을 가정한 모의실험에서는 생산자 보조금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을 1.35%포인트 높이면서도 저소득층의 경제적 후생을 악화시켰다. 반면 선별적 현금지원은 부채 비율을 0.09%포인트 높이는 데 그치면서 저소득층 후생을 개선했다.
한국의 석유 최고가격제는 정유사 판매가격에 상한을 두고 손실을 재정으로 메워주는 제도다. IMF가 경계한 가격통제와 생산자 보조금 성격을 함께 가진다. 정부는 지난 16일 11차 최고가격을 휘발유 리터당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으로 정했다. 6월 26일 7차 가격 결정 이후 네 차례 연속 동결이다.
국제유가가 오를수록 재정 부담도 커지는 구조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으로 정유사 손실 보전용 예비비 4조2000억원을 확보했고, 내년 예산에도 올해 4분기분 1조4497억원을 반영했다. 이를 합하면 약 5조6500억원이다. 산업통상부는 최고가격과 시장 추정가격의 차이가 리터당 100원 벌어질 때마다 약 1조50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효과도 약해질 수 있다. 지난달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126만926㎘로 전년 동월보다 2.97% 늘었다. 중동 전쟁이 시작된 3월 이후 첫 증가다. 추석 연휴 수요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지만, 가격 억제로 절약 유인이 약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5년째 이어지는 유류세 인하도 비슷한 한계를 안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휘발유 15%, 경유·부탄 25% 인하 조치를 11월 말까지 연장하면서 종료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 가구의 66.7%는 연료 지출이 없어 직접적인 인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시장 가격을 회복하면서 취약계층 지원은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름을 많이 쓰는 사람이 혜택을 더 보는 구조여서 사실상 부자 정책”이라며 “시장 가격대로 받고 더 걷힌 재원으로 저소득층을 지원하면 저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본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 에너지 요금도)원가 이상으로 가격을 받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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