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개혁과제 제기가 많지 않고 간혹 제기된 과제는 관심을 받지 못한다. 개혁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모두 문제이기 때문이다. 먼저 정부가 개혁에 관심이 없으니 개혁에 대한 제언이 시들해지고 있다. 또 개혁의 공급자도 기득권층의 공격을 받다 보니 움츠러들고 있다. 기득권층이 개혁의 부작용을 제기하는 것은 공론화를 촉발하므로 그나마 생산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개혁 제안자의 신뢰도를 공격하기도 한다. 이번 한은 총재에 대한 공격이 그 예다. 마키아벨리는 “기득권을 쥔 자들은 개혁가의 적이 돼 열렬하게 공격하는 반면 개혁으로 득을 볼 사람들은 미온적인 지지를 할 뿐”이라고 갈파했다. 개혁에 대한 국민의 응원이 필요하다.
둘째, 간혹 개혁과제가 정부나 언론의 관심을 받아도 이에 대한 공론형성 절차가 없다. 이는 중립적 입장에서 국민 여론을 파악하고 전문가 분석을 정리하며 추진 여부 내지 방법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는 절차를 말한다. 주무 부처가 이런 공론절차를 직접 주도하기는 어렵다. 공론화를 제안하는 순간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5세 조기 입학 건은 교육부총리까지 낙마시켰다. 또한 주무 부처는 대체로 원하는 방향이 있으므로 공론화 절차의 중립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셋째, 위 공론절차에서 얻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개혁의 추진이 결정되면 구체적 실행방법을 이해당사자와 합의하는 절차도 미흡하다. 여전히 정부는 정책결정에서 ‘결정-통보-방어’(Decide-Announce-Defend·DAD)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부에서 방침을 정해 발표한 후 이를 방어하는 방식이다.
특히 개혁의 2단계인 중립적 공론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누구나 필요성을 인정하는 개혁에 대해선 3단계인 합의기구를 바로 발족해도 된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그 예다. 그러나 지역별 비례선발제와 같이 아직 공감이 없는 대부분의 개혁 과제는 그 추진 여부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절차 없이 바로 3단계 합의를 추진하면 아무리 정부 방침이 옳더라도 기득권층은 반발하게 된다. 의사협회가 의사정원 관련 협의체에 불참하는 이유다.
누가 중립적 공론화를 주도해야 할까. 정부가 사안별로 국책연구기관에 공론화를 의뢰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예전에는 정부가 정책발표 전 미리 여론의 향배를 살피기 위해 국책연구기관을 활용하는 토론회를 많이 개최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부가 그런 의뢰를 하는 순간 해당 사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기정사실화돼 공격을 받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렇다고 정부와 무관하게 민간 연구기관이 공론화에 앞장서는 것은 임팩트가 약하다.
가장 적절한 중립적 공론화 기구는 민간 전문가 중심의 대통령 직속위원회가 아닐까 한다. 주무 부처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지만 정부와도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 위원회가 그 역할을 수행하면 될 것이다. 개혁추진에 대한 공격을 받지 않으면서 개혁에 대한 국민 여론을 담담하게 파악·형성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에 대비한 개혁이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