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동의안 기명투표는 李 셀프방탄?…'수박 색출' 논란[국회기자 24시]

김범준 기자I 2023.07.29 10:00:00

민주당 혁신위, '불체포 특권' 포기 던졌지만
체포동의안 '기명 투표' 급선회…"결과 책임"
이재명, 곧장 동의에…"非明 색출이냐" 반발
"곧 공천 '살생부'"…'사법리스크' 의식 해석도

[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스스로 혁신하겠다며 ‘김은경호(號) 혁신위원회’를 띄운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순항보단 친명(친이재명)계와 비명(비이재명)계 사이 내홍만 짙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국회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 포기 여부를 두고, 당내 ‘체포동의안’ 표결 방식을 당초 무기명 투표가 아닌 ‘기명 투표’로 노선을 급선회하면서 논란만 키웠다는 지적이 따릅니다.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혁신기구 제1차 회의에서 위원들의 발언을 들으며 미소를 보이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 민주당 혁신위, 체포동의안 ‘기명 투표’ 돌연 제안

무슨 연유에서일까요.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은 지난 21일 “책임정치라는 측면에서 투표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체포동의안 표결을 돌연 기명 투표로 제안하고 나섰습니다.

현행 국회법에는 ‘인사에 관한 안건은 무기명 투표로 표결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외압에 흔들리지 말고 양심과 소신에 따라 투표하라는 취지죠. 국회의원 체포동의안과 의원직 제명 등 의결도 인사 관련이기 때문에 본회의에서 기명 투표를 실시하려면 반드시 국회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김 혁신위원장 발표 사흘 뒤인 지난 24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빠른 시일 내 기명 투표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발언하며 이를 곧장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지난달 20일 출범한 민주당 혁신위가 같은 달 23일 ‘민주당 의원 전원의 불체포 특권 포기 및 체포동의안 가결 당론 채택’을 ‘1호 혁신안’으로 들고 나온 지 한 달 만입니다.

그러자 민주당 내 비명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졌습니다. 책임은 핑곗거리에 불과하고, 결국 ‘수박(겉은 파란색(민주당)이지만 속은 빨간색(국민의힘)이란 은어) 색출’이 목적이라는 것이죠. 공천권과 인사권 등 막강한 권한을 쥔 당대표와 지도부에 ‘낙인’ 찍히지 않도록 눈치 보느라 소신껏 투표를 하지 못해 체포동의안 표결이 올라와도 어차피 부결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것입니다.

대표적 비명계로 꼽히는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지난 2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당 혁신위를 두고 “‘이재명 지키기 위원회’라고 오인 받을 행동들을 하고 있다”면서 “혁신위의 체포동의안 기명 투표 제안은 이재명 체제에 반대하는 이름을 밝히라고 하는 것, 수박 색출을 위한 쇼”라고 원색적으로 비판했습니다.

그는 이어 “만약 체포동의안이 들어온다면 친명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나는 기명 투표하겠다’라는 선언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며 “그러면 (투표까지 가지 않아도 기명 투표를) 선언하지 않는 의원들에 대해 낙인 찍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오히려 체포동의안이 들어온다면 ‘나는 떳떳하게 (검찰 수사에) 나갈테니 모든 의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가결로 표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다른 대표적 비명계 조응천 의원도 같은 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기명 투표가 책임 정치에 부합한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하려면 강성 지지층, ‘정치훌리건’들을 철저히 배격하고 강제 당론부터 없애야 된다”고 제안했습니다.

조 의원은 이 대표가 기명 투표 지지 발언을 한 이튿날인 지난 25일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서도 “지난 6월 이재명 대표가 정당대표 연설 때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는데 이걸 기명 투표로 하자는 건 당내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앞뒤가 안 맞는 것”이라고 지적했죠.

이렇듯 민주당 내부가 술렁이자, 김 혁신위원장은 지난 26일 “정쟁의 수단으로 삼지 말라”는 입장을 추가로 밝히고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월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관련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 ‘사법리스크’ 의식했나…“기명 투표는 공천 ‘살생부’”

정치권 안팎에서는 최근 다시 사법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불체포 특권과 체포동의안을 두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셀프 방탄복’을 입으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로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의혹 ‘키맨’으로 지목돼 현재 구속 재판을 치르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입’ 때문이죠.

이 전 부지사는 검찰 수사 때와 달리, 최근 법정에서 쌍방울그룹의 방북 비용 대납을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대표에게 보고했으며 이 대표도 알았다는 취지로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그러자 검찰의 칼끝이 다시 이 대표를 향했습니다. 이르면 다음달 중 검찰이 이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다급해진 이 대표가 체포동의안 기명 투표로 부결 확률을 높여 사실상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행보를 서둘렀다는 것이죠.

쌍방울 의혹에 대해 이 대표는 지난 2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노상강도를 경범죄로 기소한 이상한 검찰’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검찰은 쌍방울 김성태 회장이 800만불을 해외로 빼돌려(특가법위반) 북한에 몰래 주었다(국보법위반)고 공소장에 써 놓고도, 막상 기소는 중범죄는 다 빼고 경미한 미신고외환거래(외환관리법위반)만 적용했다”고 적었습니다.

이 대표는 이어 “검찰과 김 회장은 이 돈이 독점개발권(희토류광산 등) 확보와 자신의 방북 추진을 위한 로비자금이 아닌 이재명을 위한 대납금이라는데, 북한이 쌍방울에 써 준 독점개발합의서는 무료였고 김 회장 방북 추진도 무료였다”면서 “북한은 방북비를 300만불이나 완불 받고 초청장 하나 안 보냈다는 것인데 이해할 수 없다”고 자기방어를 펼쳤습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명분은 국민의 알권리라고 하지만,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을 기명 투표로 하면 찬반이 바로 확인되면서 당장 내년 총선을 위한 공천을 앞두고 일종의 ‘살생부’가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결국 이재명 대표의 체포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닌, 당내 비명계 색출이 목표로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게 핵심”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민주당이 스스로 선언한 조건부 불체포 특권 포기안, ‘쿠오 바디스’(Quo Vadis·어디로 가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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