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생전에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을 이렇게 비유했다.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이어령 전 장관은 인문학자, 대학교수, 언론인, 작가, 행정가, 비평가 등 다채로운 활동을 하며 ‘시대의 지성’으로 불려왔다. 그는 ‘앉는 그 자리가 곧 강의실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박학다식했고, 달변가였다. 20대부터 60년여 동안 130여종이 넘는 책을 냈다.
큰 스승이 떠나갔다. 평생을 바쳐 세상에 이야기를 던진 이어령 선생이 26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지난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고, 말기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생애 마지막에는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집필에 몰두했다. 말년의 그는 죽음에 대한 성찰을 공유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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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부터 언론계에서 당대 최고 논객으로 활약했다. 1960년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1972년까지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 주요 언론사 논설위원을 거쳤다. 고인이 논설위원으로 언론사에 처음 발탁될 때 불과 스물일곱이었다. 1966년 이화여대 강단에 선 이후 1989년까지 문리대학 교수, 1995∼2001년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를 지냈고, 2011년 명예교수가 됐다.
고인의 일은 문명비평, 문학창작뿐 아니라 문화기획까지 확장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개막식을 총지휘하며 여러 장면을 역사에 새겼다. 개회식에 등장한 ‘굴렁쇠 소년’도 고인의 어린 시절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노태우 정부 때는 신설된 문화부의 초대 장관(1990~1991)을 역임했다. 이때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을 설립했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는 경복궁 복원계획을 수립했다.
80여년 평생 ‘이 시대 최고의 지성’, ‘말의 천재’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지난해 1월 출간된 인터뷰 책 ‘이어령, 80년 생각’(김민희 지음·위즈덤하우스)에서 이 전 장관은 “나를 키운 팔할은 ‘물음표’였다”고 했다. 지은이와의 인터뷰에서 이어령 선생은 “나는 천재가 아니여”라고 손사래까지 치며 부정을 표했다고 책은 전한다.
“내 인생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고 가는 삶이었어. 누가 나더러 ‘유식하다, 박식하다’고 할 때마다 거부감이 들지. 나는 궁금한 게 많았을 뿐이거든.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겨도 나 스스로 납득이 안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어.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가는 것이 내 인생이고 그 사이에 하루하루의 삶이 있었지. 어제와 똑같은 삶은 용서할 수 없어. 그건 산 게 아니야. 관습적 삶을 반복하면 산 게 아니지.”
선생의 마지막 사유는 죽음이었다.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지적인 깨달음을 말년에 여럿 남겼다. 지난달 출간한 ‘메멘토 모리’(열림원)는 그의 생애 마지막 저서가 됐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1987년 별세 한달 전 가톨릭 신부에게 물은 24가지 질문에 병마와 싸우고 있던 고인이 자신의 관점으로 답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팬데믹 시대의 죽음에 관해 이런 사유를 전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바이러스, 질병을 통해 개개인의 마음속에 들어와 경험하게 되고,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죽음이 자기 일로 비치기 시작한 것이죠. 죽음을 통해 황폐화된 개인을 응시하게 된 겁니다. 이 죽음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두고 볼 일이지.”, “이모털(immortal·죽지 않는)한 존재는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거지. 생명이라는 것은 다 죽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 메멘토 모리를 다시 깨닫게 된 겁니다.”
고인에게 죽음은 하나의 탐구 대상이었다. “생명이지. 나에게뿐 아니라 오늘날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도 해요. 생명 자체가 목적이고, 찬란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지. 고통마저도 생명에겐 아름다운 거예요. 죽은 사람이 무슨 고통이 있겠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믿을 수 있는 건, 온 우주에 단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승리인 생명력이에요. 어떤 절망의 시대에도 생명의 힘은 놓치지 않았으면 해.”(책 ‘이어령, 80년 생각’ 중).
나라의 지성 이어령 선생은 26일 오후 1시경 잠들어 있던 중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일 오전 8시 30분이다. 장례는 5일간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은 다음 달 2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엄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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