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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통토크]① "예술은 지식도 재산도 아닌 '생활'입니다"

장병호 기자I 2019.10.23 05:20:00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인터뷰
소문난 문화예술 애호가
소장 미술품으로 전시회 개최
"예술 지원, 개인 기부 늘어나야"

“운명인지 지금은 가족 모두 미술 관련 일을 하고 있네요.”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 최근 서울 구로구 벽산엔지니어링 본사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소장 중인 프랑스 작가 조르주 마티외(Georges Mathieu)의 ‘며느리밥풀’(melampyre)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방금 전 양혜규 작가에게 전화가 왔어요. 곧 ‘모마’(MoMA·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전시를 한다고 하네요. 농담처럼 자기 작품은 왜 안 사주느냐고 하는데…. 허허허. 사실 소장품으로 미술전을 연다는 게 부끄럽습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베이지색 정장에 보우타이가 눈에 띈다. 미술·클래식·연극 등 문화예술 다방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소문난 ‘문화예술 애호가’ 김희근(73)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다.

김 회장은 문화예술 현장을 더 바쁘게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달 29일 막을 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는 현장을 둘러보는 김 회장에게 인사를 하고자 갤러리 관계자들이 줄을 선 모습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는 후문. 23일부터는 미술전의 주인공으로 나선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의 기획전시 ‘세종 컬렉터 스토리 전(展)’을 통해 자신이 소장한 미술품 일부를 일반에 공개한다.

작가가 아닌 미술품 수집가인 ‘컬렉터’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색적인 전시다. 전시 참여 이유를 듣고자 최근 서울 구로구 벽산엔지니어링 본사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갤러리를 방불케 하는 사무실부터 문화예술에 대한 김 회장의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 회장은 “미술품을 혼자 갖고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며 “직원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다른 층에도 여러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고 미술 관련 서적들도 가져와 열린 도서관을 만들어놨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벽산그룹 창업자인 김인득 명예회장(1915~1997)의 셋째 아들이다. 미술품을 수집하게 된 것은 타고난 ‘컬렉터’로서의 소질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우표를 모았고 여행을 다니면서 구하기 힘든 와인 잔을 모으기도 했다. 그런 기질이 자연스럽게 미술품 수집으로 이어졌다. 현재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1000여 점 정도. 이번 전시에서는 앤디 워홀·로이 리히텐슈타인·백남준·이우환·박서보 등 국내외 작가들의 49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 최근 서울 구로구 벽산엔지니어링 본사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김 회장이 전시에 참여하게 된 데에는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과의 인연이 큰 역할을 했다. 김 사장은 지난 1월 취임 100일을 맞아 발표했던 비전 선포식에서 “한국예술의 새로운 발견과 세종 미술관의 방향성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미술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컬렉터에 초점을 맞춰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사실 컬렉터에 대해서는 엇갈린 시선이 존재한다. 미술계를 든든히 받치고 있는 존재지만 재산 증식이나 탈세 등 투기와 일부 음성적인 사건으로 부정적 인식도 공존한다. 김 회장이 이번 전시에 대해 “부끄럽다”는 속내를 드러낸 이유다.

김 회장 또한 자신이 소장한 미술품에 대해 “이것은 후원이 아니라 재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컬렉터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장르에 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지기 힘든 미술에서 컬렉터가 곧 시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서다.

김 회장의 미술품 수집 기준은 특별하지 않다. “개인의 취향과 구입 당시의 재정 형편에 따라 작품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그는 “건설업을 했기 때문인지 밝고 기분을 상큼하게 만드는 작품을 선호한다”며 “다만 형편이 될 정도로만 작품을 구매하지 그렇지 않은 작품을 무리해서 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문화예술 사랑은 미술에만 그치지 않는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이사장을 지냈고 실내악단 세종솔로이스츠의 명예이사장을 맡고 있는 등 클래식 분야에서도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벽산문화재단을 통해 ‘벽산희곡상’과 ‘윤영선 연극상’을 제정해 후원하면서 연극계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이처럼 김 회장이 문화예술 지원에 힘을 쏟는 이유는 아직까지 한국에서 문화가 생활화하지 못했다는 생각에서다. 김 회장은 “한국에서 문화예술은 ‘지식’이나 ‘재산’으로만 여겨지고 있지 ‘생활’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며 “문화예술이 생활이 돼야 교양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에게도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월급의 1%를 기부하면 회사가 1%를 내는 매칭 펀드 형태로 예술후원 활동을 하고 있다”며 “직원들도 잘 호응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한국의 문화예술이 정부 지원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설파했다. 스스로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서울시립교향악단 등 문화예술 단체 대부분이 정부의 지원, 곧 세금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미국이나 영국처럼 개인 기부의 비중이 늘어나야 문화예술이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 최근 서울 구로구 벽산엔지니어링 본사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김희근 회장은…

△1946년 경남 진주 출생 △경기고 △마이애미대학교 경영학 학사 △한양대 공업경영학 학사 △마이애미대학교 명예박사 △1979~1985년 한국건업 중동본부 본부장 △1985~1986년 벽산쇼핑 대표이사 △1986년 한국건업 사장 △1994년 벽산그룹 부회장 △1996년 벽산건설 대표이사 부회장 △2000년~현재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2010~2016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장 △2010~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동국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 △한국메세나협회 부회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나무포럼 회장 △세종솔로이스츠 명예 이사장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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